'표준계약서'없는 건축업계…불공정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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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313회 작성일 13-05-10 09:57본문
설계대가 지급없이 추가업무 '비일비재'...에너지효율 인증 등도 기본업무에 포함
공공건축 부문의 표준 설계용역 계약서가 없는 탓에 건축설계 업체들이 추가 작업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계약 일시 정지에 따른 불이익도 무조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건축설계 업계는 공공건축 부문 표준계약서가 없어 발주처들이 정부가 규정한 건축사의 업무 범위와 대가 기준을 무시하는 사례가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주기관별로 입맛에 맞게 계약서를 만들다 보니, 정부가 추가 업무로 규정한 업무들을 과업 지시서에 계약조건으로 명시해 업무를 부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친환경 건축물 및 에너지효율 건축물 인증 업무다.
현재 국토교통부의 ‘공공발주 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 범위와 대가 기준’을 살펴보면 친환경 건축물, 지능형 건축물, 에너지효율 등급 인증관련 설계는 추가 업무로 규정해 설계 대가를 더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등급에 따른 설계 대가 추가 비율도 규정해 만약 에너지효율 등급 1등급을 목표한 설계업무의 대가는 전체 대가의 7.5%를 더 지급해야 한다. 등급이 한 단계씩 떨어질 때마다 0.5% 추가비율이 줄어들어, 최하인 5등급인 경우는 대가의 5.5%만 추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공공건축을 발주하는 발주기관들은 이 같은 국토부의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과업 범위와 성과물에 추가 업무 작업들까지 포함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로 LH의 ‘A지구 과업 지시서’를 보면 ‘건축물에너지 효율등급 관련 서류’가 실시설계도서 부문 성과품으로 명시돼 있다.
LH의 건축설계 부문 성과품은 심의 및 기본설계도서 5가지, 실시설계도서 11가지로 나뉘는데 이 중 추가 업무에 해당하는 성과품은 무려 6가지에 달한다.
우선 심의 및 기본설계도서에서는 ‘각종 심의도서’ 부문과 ‘VE보고서’, 실시설계도서 부문에서는 ‘VE보고서 및 설계 체크리스트’, ‘전체 조감도’, ‘모형’, ‘건축물에너지 효율등급 관련 서류’ 등이 추가 업무에 해당하는 작업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추가 업무는 별도의 대가 산정 기준도 없이 과업 지시서에 계약조건으로 명시됐다. 설령 추가업무 대가를 지급한다 해도 국토부 규정을 따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친환경 건축물 인증업무는 정부가 2011년부터 등급에 따라 설계비의 8~9.5%를 추가하도록 규정하지만, 발주기관 대부분이 자의적으로 추가 업무 비용을 산정해 3000~5000만원만 주고 일을 맡긴다.
업계 관계자는 “건축업계는 표준 품셈도 없고 정확한 대가 기준이 없어 발주처가 터무니없이 낮은 대가를 지급해도 항의할 방도가 없다”며 “또한 건축설계 업체들은 발주처 눈치를 보다보니, 불만이 있어도 제대로 항의하거나 협회에 신고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뉴스&> 표준계약서 없는 부작용
◆ 무리한 장기계약, 보증보험료까지 전가
표준계약서 부재로 업계가 손해를 보는 경우는 계약기간 문제에서도 발생한다.
공공주택 부문 설계용역사업 121건을 조사한 결과 사업이 일시 정지된 사업은 무려 58건(50%)에 달했다. 평균 설계 중지 연수는 3년이었다.
현재 정부는 용역정지 기간이 60일을 초과할 때 잔금에 대한 대출 이자율을 발주처가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계약서에 이를 명시하는 발주기관은 없다. 건축업체들은 계약 사정에 어두운 편이라 이를 모르고 지나치거나, 혹은 알더라도 발주기관에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 기간이 지나치게 장기 연장될 경우도 문제다. 32건의 공공 아파트 설계용역의 최초 계약 기간을 검토한 결과 평균 계약 기간이 32.5개월에 달했다. 이 중에는 계약 기간이 무려 62개월에 달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계약 기간이 발주처 사정에 따라 연장될 경우 정부는 발주처가 업체에 매년 보증보험료를 보상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계약 장기지연 사례 중 발주처가 보증보험료를 지급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대한 내용이 계약서 작성 당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업체 관계자는 “외국은 계약 기간이 연장되면 발주처가 평균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설계 대가를 재산출해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나라 발주기관들은 물가상승률 반영은 고사하고 보증보험료까지 업체에 전가한다”며 “계약서 작성 시 표준계약 기간을 설정해야 하는데 표준계약서 자체가 없다 보니 업체들이 여러가지 계약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설계업체 골병드는 ‘사후 설계관리 업무’
발주기관별로 자체 제작한 설계용역 계약서는 업계 ‘노예 계약서’로 통한다. 계약 기간이 발주처 사정에 따라 무기한 연장되거나 추가 업무가 기본과업에 포함되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계약서에 명시된 ‘사후 설계관리 업무’다.
대형 건축설계업체 대표는 “공공주택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 발주처가 계약서에 ‘사후설계관리 업무’를 기본과업에 포함시켜 놓았다”며 “기본과업에 괄호를 치고 ‘변경 포함’이라는 네 글자를 집어넣어 끊임없는 재설계를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국토부가 ‘사후 설계관리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시공 과정에서 부분적인 보완설계 및 설계수정 등이 필요할 경우 이는 계약이 완료된 후의 추가 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발주기관이 별개 용역으로 연계 발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목설계 용역에서는 설계비의 10%를 기준으로 사후 설계관리 용역을 연계 발주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계약서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점을 조목조목 따져 보면 토목 쪽은 이미 10년 전에 개선된 내용들인데 건축만 여전히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업계는 발주처에 당당히 요구를 못 하고, 관련 협회기관들은 대응이 느리다”고 입을 모았다.
최지희기자 jh606@
9일 건축설계 업계는 공공건축 부문 표준계약서가 없어 발주처들이 정부가 규정한 건축사의 업무 범위와 대가 기준을 무시하는 사례가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주기관별로 입맛에 맞게 계약서를 만들다 보니, 정부가 추가 업무로 규정한 업무들을 과업 지시서에 계약조건으로 명시해 업무를 부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친환경 건축물 및 에너지효율 건축물 인증 업무다.
현재 국토교통부의 ‘공공발주 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 범위와 대가 기준’을 살펴보면 친환경 건축물, 지능형 건축물, 에너지효율 등급 인증관련 설계는 추가 업무로 규정해 설계 대가를 더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등급에 따른 설계 대가 추가 비율도 규정해 만약 에너지효율 등급 1등급을 목표한 설계업무의 대가는 전체 대가의 7.5%를 더 지급해야 한다. 등급이 한 단계씩 떨어질 때마다 0.5% 추가비율이 줄어들어, 최하인 5등급인 경우는 대가의 5.5%만 추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공공건축을 발주하는 발주기관들은 이 같은 국토부의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과업 범위와 성과물에 추가 업무 작업들까지 포함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로 LH의 ‘A지구 과업 지시서’를 보면 ‘건축물에너지 효율등급 관련 서류’가 실시설계도서 부문 성과품으로 명시돼 있다.
LH의 건축설계 부문 성과품은 심의 및 기본설계도서 5가지, 실시설계도서 11가지로 나뉘는데 이 중 추가 업무에 해당하는 성과품은 무려 6가지에 달한다.
우선 심의 및 기본설계도서에서는 ‘각종 심의도서’ 부문과 ‘VE보고서’, 실시설계도서 부문에서는 ‘VE보고서 및 설계 체크리스트’, ‘전체 조감도’, ‘모형’, ‘건축물에너지 효율등급 관련 서류’ 등이 추가 업무에 해당하는 작업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추가 업무는 별도의 대가 산정 기준도 없이 과업 지시서에 계약조건으로 명시됐다. 설령 추가업무 대가를 지급한다 해도 국토부 규정을 따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친환경 건축물 인증업무는 정부가 2011년부터 등급에 따라 설계비의 8~9.5%를 추가하도록 규정하지만, 발주기관 대부분이 자의적으로 추가 업무 비용을 산정해 3000~5000만원만 주고 일을 맡긴다.
업계 관계자는 “건축업계는 표준 품셈도 없고 정확한 대가 기준이 없어 발주처가 터무니없이 낮은 대가를 지급해도 항의할 방도가 없다”며 “또한 건축설계 업체들은 발주처 눈치를 보다보니, 불만이 있어도 제대로 항의하거나 협회에 신고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뉴스&> 표준계약서 없는 부작용
◆ 무리한 장기계약, 보증보험료까지 전가
표준계약서 부재로 업계가 손해를 보는 경우는 계약기간 문제에서도 발생한다.
공공주택 부문 설계용역사업 121건을 조사한 결과 사업이 일시 정지된 사업은 무려 58건(50%)에 달했다. 평균 설계 중지 연수는 3년이었다.
현재 정부는 용역정지 기간이 60일을 초과할 때 잔금에 대한 대출 이자율을 발주처가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계약서에 이를 명시하는 발주기관은 없다. 건축업체들은 계약 사정에 어두운 편이라 이를 모르고 지나치거나, 혹은 알더라도 발주기관에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 기간이 지나치게 장기 연장될 경우도 문제다. 32건의 공공 아파트 설계용역의 최초 계약 기간을 검토한 결과 평균 계약 기간이 32.5개월에 달했다. 이 중에는 계약 기간이 무려 62개월에 달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계약 기간이 발주처 사정에 따라 연장될 경우 정부는 발주처가 업체에 매년 보증보험료를 보상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계약 장기지연 사례 중 발주처가 보증보험료를 지급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대한 내용이 계약서 작성 당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업체 관계자는 “외국은 계약 기간이 연장되면 발주처가 평균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설계 대가를 재산출해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나라 발주기관들은 물가상승률 반영은 고사하고 보증보험료까지 업체에 전가한다”며 “계약서 작성 시 표준계약 기간을 설정해야 하는데 표준계약서 자체가 없다 보니 업체들이 여러가지 계약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설계업체 골병드는 ‘사후 설계관리 업무’
발주기관별로 자체 제작한 설계용역 계약서는 업계 ‘노예 계약서’로 통한다. 계약 기간이 발주처 사정에 따라 무기한 연장되거나 추가 업무가 기본과업에 포함되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계약서에 명시된 ‘사후 설계관리 업무’다.
대형 건축설계업체 대표는 “공공주택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 발주처가 계약서에 ‘사후설계관리 업무’를 기본과업에 포함시켜 놓았다”며 “기본과업에 괄호를 치고 ‘변경 포함’이라는 네 글자를 집어넣어 끊임없는 재설계를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국토부가 ‘사후 설계관리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시공 과정에서 부분적인 보완설계 및 설계수정 등이 필요할 경우 이는 계약이 완료된 후의 추가 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발주기관이 별개 용역으로 연계 발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목설계 용역에서는 설계비의 10%를 기준으로 사후 설계관리 용역을 연계 발주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계약서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점을 조목조목 따져 보면 토목 쪽은 이미 10년 전에 개선된 내용들인데 건축만 여전히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업계는 발주처에 당당히 요구를 못 하고, 관련 협회기관들은 대응이 느리다”고 입을 모았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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