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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갑을, 상생 그리고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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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128회 작성일 13-05-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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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식 정경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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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갑을이다. ‘라면 상무’와 ‘빵 회장’ ‘조폭 우유’ 사건이 불거지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상황과 유형은 다르지만 저변에는 힘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횡포를 부린 데 대해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는 모양새다. 개인의 개념 없는 행동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비뚤어진 갑을문화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어쭙잖은 ‘갑질’을 한 라면 상무는 결국 어렵사리 오른 임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회사 이미지 손상도 컸다. 빵 회장은 자신이 세운 회사를 접는 절차에 들어갔다. 조폭 우유 회사는 불매동맹 확산 등으로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을의 반란이다. 문득 이런 상황이 영상처럼 스쳐간다. 갑(甲)의 한자는 어깨를 편 듯한 당당함이 느껴진다. 반면 을(乙)은 무릎 꿇은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을이 굽혔던 다리를 펴고 벌떡 일어나자 큰 키에 압도당한 갑이 당황해서 꼬리를 내리는 것 같은 모습 말이다.

갑을 관계의 본질은 생존사슬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본사와 대리점, 고용주와 고용인 등은 상생의 관계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러나 현실은 상하관계를 넘어 주종관계다. 갑이 을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뻘 되는 본사 직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부당한 요구를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치졸한 갑질이 생존을 담보로 했기 때문에 더 울화통이 터진다. 을의 반격에 놀라기는 하지만 갑은 곧 다시 어깨를 펼 것이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갑질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같은 맥락의 경제민주화는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의미가 모호하고 나와는 상관 없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갑을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나 자신과 가족, 이웃의 문제로 다가온다. 감정까지 묻어 있다. 이를 배경으로 관련 제도의 법제화도 탄력을 받고 있다. 부당한 단가 인하나 발주 취소, 반품 행위에 대해서도 피해액의 3배 범위 내에서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납품단가 후려치기’의 대응책을 담은 하도급법이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사각지대가 있다. 이른바 수퍼갑인 정부의 전횡을 막는 논의는 비켜나 있는 것이다. 기업 간 원∙하도급 규제에 초점이 맞춰지며 최대 경제주체인 정부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절름발이 정책인 셈이다. 특히 건설분야에 있어서 정부는 최대 구매자이자 경쟁의 룰을 정하는 주체다. 그럼에도 제도라는 미명 아래 부당한 단가 인하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공공사의 경우 정부 스스로가 정한 가격의 70%, 때로는 절반에 산다. 실적공사비제도가 도입되면서 깎인 가격으로 예가가 결정되고 거기서 또 깎인 가격으로 낙찰된다. 깐데 또 까는 악순환 구조다. 후려치기도 이런 후려치기가 없다. 수요독점적 착취의 전형이다.

갑을, 상생, 경제민주화 등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말들이다. 건설분야에서도 시급하고도 중요한 사안들이다. 이들의 안착에 산업미래가 걸려 있다. 성공의 열쇠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정부와 원도급, 하도급 등 생산주체 간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이뤄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 한쪽이 부족하거나 치우치면 효과가 반감된다. 출발은 상식이다. 라면 상무, 빵 회장, 조폭 우유에 분노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분수효과니 낙수효과니 하는 거창한 경제용어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최소한 원청사가 밑지지는 않도록 해줘야 협력사나 근로자에게 온기가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비상식이 너무 오래 지속돼 상식처럼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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