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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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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74회 작성일 13-07-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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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초등학생이 물었다. “약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뭐죠?” 선생님이 대답했다. “없다. 목숨을 거는 수밖에. 하지만 이런 용기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굴복하거나 도망가는 게 훨씬 현명한 거다.” 현재 방영 중인 한 드라마에서 나온 선생님과 학생의 대화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개인은 직장 내 조직과 타협하고 기업은 갑을구조에 맞춰 굴종한다. 이것이 가만히 있거나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면 중간은 갈 수 있는 선택이다.

 드라마에서는 질문을 던진 초등학생이 그동안 괴롭혔던 중학생들에게 목숨을 걸고 대항을 한다. 흠씬 두들겨 맞고도 달라붙는 초등학생에게 질린 중학생들이 달아난다. 목숨을 건 싸움이 결국에는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일 뿐이다. 현실에서 목숨을 건 싸움의 결말은 대개 비극이다.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해도 재기 불능의 반신불수가 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조직 내 불의에 맞서 내부 고발에 나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고발은 조직의 잘못된 관행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됐지만 당사자들은 배반자라는 낙인 속에 조직에서 내팽개쳐졌다. 본사의 불공정 거래를 참지 못해 행동에 나선 대리점주는 사회적으로 갑을관계의 문제를 끌어내는 데 일조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대리점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건설사들이 발주기관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공사 수행 중 들어간 간접비를 지급받기 위해 소송에 나선 것이다. 발주기관을 통상 수퍼갑이라고 지칭한다. 을로 지칭되는 건설사에 관한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서다. 발주기관은 시공사를 선정하는 입찰과정부터 영향력을 행사한다. 계량화된 제도라면 모를까, 주관적 심사가 가미된 제도에서는 발주기관이 왕이다. 발주기관의 의중이 낙찰여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공과정에서 발주기관의 권한은 더욱 커진다. 현장의 모든 시공과정을 관리감독하는 게 발주기관이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현장운영의 성패가 발주기관 감독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발주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소송 당사자인 일부 발주기관이 보복차원에서 소송을 낸 건설사들의 현장감독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장소장들이 본사에 하소연을 하면서 알려진 얘기다. 발주기관이 딴지를 걸면 수익을 낼 수 있는 현장은 거의 없다. 공정은 공정대로 흐트러지고 비용은 비용대로 들어간다. 과거 발주기관을 상대로 소송에 나선 건설사들 중 상당수가 소송을 중도에 포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갑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고 해서, 정부가 공공기관의 불공정한 관행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해서 발주기관과 건설사가 대등한 위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발주기관은 여전히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갑이다. 머리를 치켜든 건설사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며 보복을 가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압박하는 치사스런 반칙을 해대고, 이것이 용인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약자는 그냥 굴복하거나 도망가는 게 훨씬 현명한 행동”이라는 드라마 대사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찌른다. 간접비 소송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권혁용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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