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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와의 전쟁? 의원 입법, 지자체 조례 넘어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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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97회 작성일 14-01-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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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양유업 방지법’, ‘구미 불산사고 방지법’. 이들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남양유업 방지법은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구미 사고 방지법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말한다. 무슨 일만 터졌다하면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 방지법’을 쏟아내다보니 붙여진 이름들이다. 매년 650여건의 규제 법안이 새로 쏟아지고 있다.

 #2.

 현대차그룹은 7년 넘게 추진해왔던 뚝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설 계획을 최근 포기했다. 서울 성수동 뚝섬 인근의 옛 삼표레미콘 부지에 약 2조원을 투자해 110층짜리 초고층빌딩을 짓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서울시가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제한한 ‘초고층 건축 관리기준’을 내놓자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의원 입법, 지자체 조례 등이 사각지대로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정부 부처들조차 앞에선 규제 철폐를 외치다가, 뒤로는 의원들에게 ‘청부 입법’을 통해 교묘하게 규제를 늘리고 있다.

 19일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건수가 아닌 가중치로 규제 총량을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 비용이나 중요도, 파급 효과, 투자 효과 등을 기초로 기존 규제에 가중치를 설정해서 총량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같은 규제총량제는 영국 정부의 ‘원인, 원아웃(One-in, One-out)’ 규정과 유사한 제도로,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려면 비슷한 수준의 다른 기존 규제를 없애는 방식이다. 역대 정권들도 규제 철폐를 공언했지만 번번히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숫자’에 집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최근 5년간 연평균 650건의 새로운 규제가 생겨났다. 지난해 말 기준 정부 규제 수는 1만5065건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807건의 규제가 추가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초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규제 총량제를 도입하고 규제개혁 장관회의 신설 등 규제 개혁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정부는 우선 규제 신설을 어렵게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규제를 신설할 경우 고시나 훈령, 예규, 공고 등 행정규칙이 아닌 엄격한 제·개정 절차를 거치는 법령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통제받지 않는 규제입법의 주요 통로인 의원 입법이다. 의원 입법은 규제개혁위원회의 사전적 규제심사를 면제받고 있다. 정부 입법이 공청회, 규제 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 10단계를 거쳐야 하는 데 비해 의원 입법은 동료 의원 10명의 서명만 있으면 상임위로 직행한다. 정부가 가중치 중심의 규제 총량제를 도입하고 규제 신설을 법령으로 바꿔도 여전히 의원 입법은 사각지대로 남는다.

 의원 입법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세다. 14대 국회 당시 321건에 불과했지만 지난 18대 국회에선 무려 40배에 육박하는 1만2220건을 기록했다. 2년이 채 안 된 19대 국회는 벌써 6518건의 의원 입법을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의원 입법이 늘어나는 데는 정부 부처가 국회의원에게 부탁해 대신 입법하는 이른바 청부 입법의 영향도 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민주화를 위한 주요 법안 14건 중 13건을 의원입법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정부도 문제 의식을 갖고 국회법상에서 의원 입법 규제 심사를 하도록 유도하고 사후적으로 정부가 규제 영향을 분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강봉균 건전재정포럼대표(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의원 입법안이 제출되면 규제에 따른 국가적 이익과 비용을 비교할 수 있는 ‘규제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전문적 심사기구를 국회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 조례도 규제 개혁의 걸림돌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차 뚝섬 GBC 건설을 좌초시킨 입지 규제다. 국토교통부는 17일부터 준주거·준공업·상업, 계획관리지역의 입지 규제를 ‘금지된 것만 빼고 다 된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발표대로라면 준주거·근린상업지역 등에 야외극장, 야외음악당, 어린이회관 등의 관광휴게시설도 지을 수 있고, 비도시지역에서 비정형 부지의 개발도 한결 쉬워진다. 하지만 지자체의 조례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6개월 후부터 시행된다. 지자체장이 반발할 경우 실제 시행시기는 한없이 늦춰질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의원 입법의 규제 심사시스템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며 “의원 입법이 규제 철폐의 시각지대로 남고 지자체 조례가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는 한 규제와의 전쟁은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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