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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공공시장 정상화의 첫 단추를 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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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19회 작성일 13-12-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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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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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멀리 보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수십개 건설업체가 담합에 연루돼 무더기로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받은 상황 말이다. 공공시장은 그동안 너무 위태로웠다. 건설사들은 자율 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일부 입찰가격을 협의했다. 담합 처벌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설마 이것이 담합이 될까”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기술 경쟁에서는 기술 영업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로비가 횡행했다. 기술자들이 현장을 떠나 영업 일선에 나섰고 그 비용은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공공시장의 주체인 정부와 발주처는 사정을 알면서도 침묵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다. 오히려 입찰제도로 인해 만들어진 기득권을 잃을까 노심초사했다.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제도를 만든 당사자들은 기술 영업의 대상이 됐다. 복잡한 저가심의 제도는 발주기관에 권력을 부여했다. 사정기관들은 공공시장의 부조리를 파악하고도 좌시했다. 잘못된 부분을 도려낸 후 개선하려 하기 보다는 필요할 때 손봐주기 위한 방편으로 여겼다. 건설사들은 이곳저곳 눈치만 보면서 좌불안석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올해 터지고 말았다. 그동안 시한 폭탄으로 잠재했던 4대강 사업 및 LH 최저가 아파트 공사와 관련한 담합으로 50여개사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기술 경쟁에서의 뇌물공여로 인해 적지 않은 업체들이 영업정지 처분을 당했다. 오랫동안 내재돼 있던 공공시장의 치부들이 한꺼번에 까발려진 것이다. 당연히 건설업계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기업을 영위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건설업계가 9일 ‘공정경쟁 및 자정환경 조성을 위한 대책회의’를 갖는다고 한다. 이번 대책회의는 업계와 학계, 정부가 모여 그간 공공시장에서의 부당 공동행위를 자성하고 범산업 차원에서 자정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회의 결과에 따라 필요하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자정환경을 만들기 위한 절차와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대책회의는 업계 스스로 위기를 절감하면서 이뤄졌다. 따라서 종전 보여주기식의 단발성 퍼포먼스 행사와는 달라야 한다.

 대책회의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공공시장 구성원 모두가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정부와 발주기관은 입찰제도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권한에 연연하지 말고 산업발전과 공정경쟁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건설사들은 기업별 이해관계를 떠나 공공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향에서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또 공정하고 깨끗한 입찰경쟁에 업체들 모두가 동참하고 이를 어길 때에는 회사의 문을 닫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학계도 정부와 업계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학자적인 양심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장은 일을 어렵게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 위기에 대처하다 보면 성공 주기가 늦춰지겠지만 이를 극복한 후에는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건설사들에 대한 무더기 영업정지도 불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같은 취지로 생각할 수 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적인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고, 역사 속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 지금 건설업계에 주는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다. 9일 대책회의가 뒤틀려진 공공시장 정상화의 첫 단추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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