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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공공공사 유찰사태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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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71회 작성일 14-02-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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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산업팀장

  공공공사 입찰에서 유찰사태가 거듭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4일 서울 가좌 행복주택 1공구의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 서류를 접수했다. 지난달 17일 첫 번째 PQ접수가 1개 컨소시엄의 참여로 자동 유찰돼 재공고에 따른 두 번째 PQ접수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첫 번째 PQ접수와 마찬가지로 1개 컨소시엄만 참여해 또다시 자동 유찰된 것이다. LH는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서 다시 재공고해야 하지만, 조건이 종전과 같다면 결과가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 1공구의 유찰사태는 가좌 행복주택 1공구보다 더욱 심각하다. 이 공사는 설계시공일괄입찰(턴키)방식으로 벌써 세 차례나 입찰공고됐지만 아직도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집행은 요원하다. 지난해 함께 입찰공고된 3공구와 5공구는 이미 입찰이 집행돼 건설사 간 수주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1공구는 세 차례의 입찰공고에도 불구하고 1개 컨소시엄만 PQ접수에 응해 입찰집행이 불발됐다. 정상적으로 입찰이 집행된 다른 공구들과 비교해 반 년 이상 사업추진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답답하고 속이 타는 쪽은 발주기관일 것이다. 정해놓은 일정이 있는데 시공사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도시철도와 같은 선형공사는 전체 공구가 함께 완공돼야 철도를 가동할 수 있다. 한 개 공구라도 준공이 지연되면 나머지 공구의 적기 준공은 소용이 없어진다. 마음같아서는 수의계약이라도 하고 싶겠지만 국가계약법령을 어길수도 없는 노릇이다. 입찰이 3회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지만 입찰요건조차 성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재공고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게 지금의 규정이다.

 유찰사태의 근본 원인은 수익성이다. 공사를 수주해도 손해가 불을 보듯 뻔하니, 건설사들이 입찰참가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가좌 행복주택 1공구만 해도 사업규모 축소 등을 거치며 책정된 공사비 자체가 너무 박하고 인공데크 건설에 따른 리스크가 크다는 게 건설업계의 지적이다. 사상~하단선 1공구는 박한 공사비로 인해 지역의무공동도급 지분을 채울 수 있는 지역업체 확보가 걸림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개 컨소시엄은 힘든 상황에서도 공사를 수주해 보겠다고 꾸준히 PQ서류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유찰사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설사들이 모두 외면하면 모를까, 1개사라도 관심을 갖고 있으면 유찰까지는 가지 않았다. 수주에 관심이 있는 업체가 적당한 업체를 ‘들러리’로 세워 경쟁요건을 만들어 유찰을 피했던 것이다. 발주기관들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적으로 넘어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같은 관행적인 일들조차 담합으로 몰아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최근 공공시장 입찰에서 유찰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가 않다.

 현 정부들어 법과 원칙이 유독 강조되고 있다. 이는 경제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법과 원칙의 잣대로만 잴 수 없는 게 많다. 더욱이 경제는 생물과 같다고들 말한다. 수많은 주변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게 경제다. 그래서 때로는 적당한 타협도 필요하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면 원칙에 어긋난다고 해도 타협을 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다. 이것이 바로 효율이다. 지금 유찰을 겪고 있는 발주기관들은  ‘들러리’를 세워도 좋으니 입찰이 성사됐으면 하는 게 본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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