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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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175회 작성일 14-06-18 09:23본문
김우진(주거환경연구원 원장)
세월호 참사를 보고, 세월호의 69세 선장의 행위를 보면서 모두들 분노했다. 살인죄 그 이상의 죄라도 찾아서 부과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영국의 ‘버큰헤드호’ 침몰과 ‘타이태닉호’ 침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돌아서서 혼자 있을 때, 내 속의 뭔가가 나를 비웃고 있는 느낌이었고,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끊임없이 생각났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 내면에 수많은 악과 선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들을 감추며 살지만 극단적 순간에 이르면…”
세월호 선장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6·25전쟁을 겪으면서 굶어 죽은 사람도 보았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초콜릿을 얻기위해 미군 지프차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부만 잘하면 어지간한 잘못은 용서되었다. 어떻게 하든 좋은 대학을 가야 했다. 고전을 읽고 시를 노래하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직장에 들어 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소리를 직장상사, 선배로부터 들어왔다. 부화뇌동과 복지부동이 최고의 사회생활이었다. “아아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유행가를 들으면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어떤 모임에 가도 그날 비용을 척척 내야만 좌석의 중심에 앉을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었고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직장에서 해고되고, 그나마 나은 것이 명예퇴직이었다. 제로섬 게임에선 동료도 적이었다. 어떡하든 직장에 붙어 있으려고 일이 없어도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한참 커가는 자식을 보고 있으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은 자식들의 미래까지 망치는 것이었다. 젊은 신입 직원들의 눈에는 저효율의 대표적 사례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야만 하는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이러는 사이 가정엔 점차 소홀해졌다. 자식과 대화도 없을 때가 1주일 이상 가는 경우도 있었다. 겨우 명퇴를 피하고 정년퇴직을 하면 세상은 모두 나에게서 떠나가 있었다. 퇴직금과 연금으로 생활하기는 정말 빠듯하다. 어디 아파트 경비라도 일하고 싶으나 그나마 쉽지 않다.
세월호 선장으로서는 그 나이에 청해진해운에서 270만원이라는 급여를 주면서 선장으로 고용해준 것이 고맙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자식에게도 부인에게도 위엄이 서고, 자신 스스로에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였을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단지 돈벌이 부속품으로서의 선장이지, 선장으로서의 존경이나 인격적인 대우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과적을 해도 눈감고, 개조로 선박이 전복될 수 있다는 위험도,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직장 문화에서 고용주에게 직언하기가 거의 불가능 했을 것이다. 내 책임이 아니니까, 내 소관이 아니니까 괜히 나서봐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하나씩 살펴보면 사소한 구명정, 구명복, 과적, 선박개조 등등 모든 문제들을 감독기관과 청해진해운이 함께 어울린 술자리에서 “좋은 게 좋다”는 말로 넘어가 결국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대한민국의 자부심도 함께 침몰시킨 결과를 빚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 ‘버큰헤드호의 세튼 함장’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개그일 것이다. 우리 사회나 청해진해운은 평소에 세튼 함장에게 영국민이 보여준 존경이나 대우의 반이라도 69세 선장에게 해주었는가? 이 선장은 세튼 함장과 같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가?
세월호가 침몰할 때,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하이드가 어느새 폭발하듯 밖으로 튀어나왔을 것이다. “오직 살고 보자는….” 이는 이 선장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50대, 60대가 모두 갖고 있는 내보이기 싫은 내면을 보여준 사례일 뿐이다. 자기 내면의 하이드를 이 선장이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멘붕이 일어나고, 아니 그래서 더욱 강하게 세튼 함장을 이야기하는지 모른다. 나는 다르다고.
그렇다고 이 선장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제2의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만, 위로만 급박하게 달려오느라 보지 못했던 자기를 되돌아보는 사회 전반적 각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예의도 모르고 버릇없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꾸짖던 그 젊은 청춘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구한 것이다. 오히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이었던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버큰헤드호나 타이태닉호의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위선과 가식의 탈을 벗어던지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갑을 두드리기 보다는 젊은이들의 등을 두드려주어야 한다. 격동과 파란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야 한다. 자기가 변해야 주변이 변하고, 주변이 바뀌어야 국가가 바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 세월호의 69세 선장의 행위를 보면서 모두들 분노했다. 살인죄 그 이상의 죄라도 찾아서 부과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영국의 ‘버큰헤드호’ 침몰과 ‘타이태닉호’ 침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돌아서서 혼자 있을 때, 내 속의 뭔가가 나를 비웃고 있는 느낌이었고,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끊임없이 생각났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 내면에 수많은 악과 선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들을 감추며 살지만 극단적 순간에 이르면…”
세월호 선장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6·25전쟁을 겪으면서 굶어 죽은 사람도 보았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초콜릿을 얻기위해 미군 지프차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부만 잘하면 어지간한 잘못은 용서되었다. 어떻게 하든 좋은 대학을 가야 했다. 고전을 읽고 시를 노래하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직장에 들어 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소리를 직장상사, 선배로부터 들어왔다. 부화뇌동과 복지부동이 최고의 사회생활이었다. “아아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유행가를 들으면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어떤 모임에 가도 그날 비용을 척척 내야만 좌석의 중심에 앉을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었고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직장에서 해고되고, 그나마 나은 것이 명예퇴직이었다. 제로섬 게임에선 동료도 적이었다. 어떡하든 직장에 붙어 있으려고 일이 없어도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한참 커가는 자식을 보고 있으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은 자식들의 미래까지 망치는 것이었다. 젊은 신입 직원들의 눈에는 저효율의 대표적 사례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야만 하는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이러는 사이 가정엔 점차 소홀해졌다. 자식과 대화도 없을 때가 1주일 이상 가는 경우도 있었다. 겨우 명퇴를 피하고 정년퇴직을 하면 세상은 모두 나에게서 떠나가 있었다. 퇴직금과 연금으로 생활하기는 정말 빠듯하다. 어디 아파트 경비라도 일하고 싶으나 그나마 쉽지 않다.
세월호 선장으로서는 그 나이에 청해진해운에서 270만원이라는 급여를 주면서 선장으로 고용해준 것이 고맙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자식에게도 부인에게도 위엄이 서고, 자신 스스로에게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였을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단지 돈벌이 부속품으로서의 선장이지, 선장으로서의 존경이나 인격적인 대우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과적을 해도 눈감고, 개조로 선박이 전복될 수 있다는 위험도,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직장 문화에서 고용주에게 직언하기가 거의 불가능 했을 것이다. 내 책임이 아니니까, 내 소관이 아니니까 괜히 나서봐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하나씩 살펴보면 사소한 구명정, 구명복, 과적, 선박개조 등등 모든 문제들을 감독기관과 청해진해운이 함께 어울린 술자리에서 “좋은 게 좋다”는 말로 넘어가 결국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대한민국의 자부심도 함께 침몰시킨 결과를 빚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 ‘버큰헤드호의 세튼 함장’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개그일 것이다. 우리 사회나 청해진해운은 평소에 세튼 함장에게 영국민이 보여준 존경이나 대우의 반이라도 69세 선장에게 해주었는가? 이 선장은 세튼 함장과 같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가?
세월호가 침몰할 때,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하이드가 어느새 폭발하듯 밖으로 튀어나왔을 것이다. “오직 살고 보자는….” 이는 이 선장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50대, 60대가 모두 갖고 있는 내보이기 싫은 내면을 보여준 사례일 뿐이다. 자기 내면의 하이드를 이 선장이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멘붕이 일어나고, 아니 그래서 더욱 강하게 세튼 함장을 이야기하는지 모른다. 나는 다르다고.
그렇다고 이 선장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제2의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만, 위로만 급박하게 달려오느라 보지 못했던 자기를 되돌아보는 사회 전반적 각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예의도 모르고 버릇없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꾸짖던 그 젊은 청춘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구한 것이다. 오히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이었던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버큰헤드호나 타이태닉호의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위선과 가식의 탈을 벗어던지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갑을 두드리기 보다는 젊은이들의 등을 두드려주어야 한다. 격동과 파란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야 한다. 자기가 변해야 주변이 변하고, 주변이 바뀌어야 국가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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