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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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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74회 작성일 14-04-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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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식 정경팀장

   
요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심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마하경영’으로 대변되는 신경영 2.0 버전이 속도를 내지 못해서가 아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비자금 사건으로 선고받은 벌금(1100억원)을 노역으로 대신할 경우 일당이 1억1000만원이었다. 이에 비해 조세포탈, 횡령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허 전 회장의 일당은 5억원에 달한다. 5배 가까이 높다. 글로벌 그룹 회장이 지방 중견그룹 회장의 일당보다 못한 것으로 평가받아 자존심(?)이 상한다는 얘기다.

 물론 시중에 나도는 우스갯소리다. 일반인의 노역 일당 5만~10만원에 비하면 최고 1만배다. 이 회장이 비교 대상으로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법하다. 노역의 일당을 비교대상으로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하지만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차라리 이 회장을 내세운 것이라는 설명이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보자는 의미도 있을 듯하다. 88만원 세대는 도대체 얼마 동안 일을 해야만 허 전 회장의 하루 노임을 벌 수 있는지는 계산하고 싶지도 않다. 꼬여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소리는 왠지 모를 무게에 눌려 목청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향판의 부도덕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연줄이 생겼고, 그로 인해 법보다는 인정이 앞섰다고 이해하고 싶다. 법관도 사람인데 평소 호형호제 하던 사람에게 매몰차게 하기도 어렵지 않겠느냐고 양보하고 싶다.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우연히 대주그룹 계열사가 지은 고급 아파트에 살았고, 그 집을 산하 개발회사가 사들인 것이 우연이었다는 말도 믿고 싶다. 잘못은 바로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점이 드러난 향판제도는 고치면 된다. 개인의 비리는 그 경중에 따라 단죄하면 될 일이라는 말이다.

 마음의 생채기는 무시당했다는 느낌에서다. 유전무죄라는 케케묵은 단어를 들추지 않아도 법은 공평하지 않았고, 법관의 비뚤어진 차별을 정당화했다는 점도 속을 쓰리게 한다. 법관은 사회의 마지막 양심이라는 생각도 접어두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직자라면 국민정서 정도는 헤아려 줄 것으로 믿었다. 결과는 그 믿음이 한낱 망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주었다. 국민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생각지도 않았다.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최소한 상식과 양심만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그 소박한 바람마저 여지없이 무너진 아픔이 더 큰 것이다.

 얼마 전 눈길을 끄는 보고서가 나왔다. 사파 모테샤리 등 수학자들이 이론적 모델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문명의 붕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인은 핵도 아니고 전쟁도 아니었다. 엘리트(부자)들이 너무 많이 소비하고, 대중(빈곤층)은 빈곤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로마제국, 중국 한제국, 인도 굽타왕조의 붕괴는 상류층이 몰락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응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적은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한다(不患寡而患不均)”는 공자의 말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 국민은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을 한다. 이런 정서가 우리나라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설명도 덧붙여진다. 남보다 더 잘 돼야 한다는 경쟁의식이 오늘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묘한 비아냥이 깔려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노블레스들의 오만 말이다. 오만은 불만을 부르고 불만은 분노로 이어진다고 보고서는 경고하고 있다. 노블레스들에게서 오블리주는 접어두고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하는 것조차 포기할 때는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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