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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건설의 이순신 장군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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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52회 작성일 14-08-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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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서울대 건설환경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극장가는 물론 우리사회는 온통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영화 ‘명량’이 화제다. 이 영화가 최단 기간 내 최대 관객 동원이라는 각종 기록들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이순신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엇이 시간을 400년 전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일까?

 관객을 빨아들이는 건 영화의 품질이나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가 아닌 이순신 장군, 그 자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옛말에 따르면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한다. 지금 우리사회가 영웅을 탄생시킬 만큼 난세일까는 국민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도 좋다. 다만 국민 각자의 행복감이 떨어지고 있고 시장 경제가 과거와 달리 체감도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국민경제가 조만간에 나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국민이 많지 않다는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정을 끌어가고 있는 행정부나 민심을 끌어가는 국회,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실망이 4세기 전의 성웅 이순신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건설에는 이순신 대교는 있지만 이순신 장군은 없다. 건설은 지금 분명 이순신 장군과 같은 리더십을 갖추고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을 애타게 찾고 있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건설에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인물들이 많았다. 지금보다 어려운 경제 환경이었지만 국민의 배고픔과 경제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한국건설 거인’의 행동과 말을 주시했다. 국민 개인의 소득이 금액으로는 지금의 6%에 불과했지만 미래에 대한 믿음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했다.

 국내 건설의 현 상황은 심각한 난세다. 선진국의 발전 경로를 보면 현재는 민간시장이 지배하는 게 맞지만 부동산 거래와 고정자산 투자 시장은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 시장 기능보다 정치권과 일부 단체의 목소리가 더 득세한다. 공공시장은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 당장을 보살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건수를 늘리기 위해 액수를 줄이고 큰 공사보다는 작은 공사에 예산을 배분한다.

 한국은행 통계자료에는 분명 국내 건설의 수지는 적자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건설은 물론 일부 시민단체는 이 숫자를 믿지 않는다. 공공공사에는 반 이상의 거품이 끼어 있어 노다지 사업이라 주장한다. 예산이 2.5조원으로 추정된 호남고속철도에서 담합으로 인한 과징금으로 4335억원을 매겼다. 건설공사에 어떤 수익이 숨겨져 있길래 차감하고 남은 징수액이 17%나 될까? 공정거래법에는 담합으로 인한 징수액을 3%로 제한했는데 왜 국가계약법에는 30%로 했을까? 30% 이상 수익이 나기 때문이 아니라면 더 큰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

 올해 들어 시공능력평가액 1,2위 업체가 국내 공공공사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현상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에 따라 처벌할 뿐이라 주장한다. 영국 건설산업에 따르면 최저가낙찰제가 확대될수록 업체들은 자기 방어 수단으로 담합의 힘을 빌린다고 경고했다. 영국 건설이 최저가낙찰제도를 폐지한 이유 중 하나다.

 국내 건설의 기반인 기업은 강하다. 한국경제의 총규모 순위 세계 15위보다 월등하게 높은 5~6위권을 세계 건설시장에서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한국건설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이유는 뭔가? 필자의 판단은 경쟁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 즉 건설공사 발주 및 계약제도 차이 때문이라 본다. 해외 시장에는 발주기관과 입찰자, 즉 거래 당사자 상호 간에 경쟁과 견제, 그리고 신뢰가 작동한다. 하지만 국내 공공공사에는 거래 당사자 중 발주기관은 보이지 않고 규제 기관과 입찰자만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경쟁과 신뢰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건설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려면 정부와 산업계를 이끌어 갈 강력한 리더그룹이 등장해야 한다. 국내 건설에는 경영자 혹은 관리자 그룹은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 산업이 가야 할 방향과 난국을 타개하는 데 앞장 설 리더그룹은 보이지 않는다. 건설이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찾고 있음은 분명하다. 리더나 리더그룹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산업이 길러내야 한다. 차별성을 무시하고 경쟁을 기피하는 풍토, 서비스 구매자(건설의 경우 발주자)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 기술입찰보다 운찰제를 더 선호하는 태도 등은 이순신의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국건설이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과거 향수에 매몰되기보다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야 한다.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는 건설이기 때문에 무궁무진하다. 안으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민간 자본에 의한 민간시장 창출이 대기하고 있다. 밖으로는 연간 10조달러의 무한대 시장이 열려 있는 셈이다.

 전 국민이 이순신 장군에 열광하는 것도 우리사회에 대한 미래 때문이다. 한국건설도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국건설 스스로가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리더그룹을 만들어가야 한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절대 스스로 탄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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