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시장 가격에 물가변동 지수 등 다양한 요소 반영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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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376회 작성일 14-10-06 09:13본문
[심층기획]<좌담> 실적공사비 족쇄...잃어버린 10년
<건설경제>가 건설업계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실적공사비 제도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심층분석한 기획을 마무리하는 차원으로 건설산업 전문가 6인에게 이 제도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실적공사비 개선 방안을 마련한 이후 세부 추진 내용이 마련되는 가운데 이번 전문가들의 진단 내용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의 공통 지적사항은 정부의 방향은 옳으나, 과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방향 제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산 절감에 목매는 정부가 과연 실적공사비를 현재 제시한 방향으로 올곧게 끌어갈 수 있을까. 건설산업 전문가 6인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결국 정부의 개혁의지다. 언제나 방향 자체가 틀렸던 적은 없었다.
사회: 박봉식 건설경제 산업1부장
참석: 김상범 동국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김충권 대한건설협회 기술정책실장
김한수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김형식 대한전문건설협회 기술지원실장
이우호 현대건설 토목견적실장
홍성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Q 계약단가만 활용해 실적단가를 산정하는 현행 방법대신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을 활용토록 국가계약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입법예고됐다.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평가는?
김충권: 이제라도 다양한 가격을 반영한다는 정부 방침은 옳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선진국도 계약단가 외 입찰단가, 시장조사가격 등 시장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거래가격을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계약단가, 입찰단가, 시공단가, 노임 및 자재단가 등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을 수집, 축적해 활용하고 수시로 시장과 시공상황을 조사해 피드백할 수 있는 체계적 공사비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김형식: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을 활용하면 현재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공사비 부족, 부실시공 등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 경우 수집된 공사비 자료 등의 객관적 검증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우호: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이 있는데도 정부는 지금까지 가장 심하게 왜곡된 최저계약단가를 조사결과에 반영해왔다. 이제부터라도 실제 발생하는 단가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태도다. 다만, 가장 하위시공조직(하도급업체)에서 실제 발생하는 단가는 그야말로 하도급업체에 실제 지급되는 실비일 뿐이다. 낙찰률이나 원도급사의 이윤, 발주기관의 공사비 심사 시 관행적인 예산삭감 등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현행 실적공사비가 지속적으로 현장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것이 실질 물가상승비 반영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롭게 변경되는 실적공사비(또는 시장가격) 제도에서는 반드시 물가상승비 계산에서 실질물가가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홍성호: 정부가 세운 방향은 일단 옳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표준 시장가격을 산정함에서 활용될 공사비 자료의 유형과 산정절차 및 방법이 구체화돼 있지 않아 객관성과 현실성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라 생각된다. 향후의 표준 시장가격은 공사비 자료만을 근거한 객관성보다는 공사비 자료와 엔지니어의 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용돼야 한다. 그 이유는 전수조사가 아닌 이상 편향된 공사비 자료가 수집될 것이 불가피할 것이며, 또한 우리나라의 공사비 자료의 상당수는 왜곡된 것이 많아 공사비 자료만 근거해서는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수집된 공사비 자료만을 가지고 표준 시공가격을 산정한다면, 객관성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김한수: 사실 기존에 계약단가를 활용한 것이 반드시 문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축적된 계약단가를 해당 사업의 특징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었던 경직성, 계약단가를 시장단가에 맞게 해석할 수 있는 발주기관의 역량 부족, 발주기관의 공사비 산정 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 코스트 전문가(예, 영국의 QS) 활용의 부재 등 세 가지라고 본다. 이 세 가지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단가정보 소스(source)의 다양화는 오히려 “어느 단가정보가 맞는가?”라는 새로운 시빗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발주기관 입장에서는 감사나 예산절감을 신경 쓰다 보면 가장 싼 단가를 선택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결국, 단가 활용의 다양화가 어떤 운영 원칙과 시스템을 전제로 하는가가 명확하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태를 단순하게 ‘어떤 가격을 사용하느냐’로 국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적공사비 대신 표준시장가격을 채용한다면, 어느 기관에서 시장가격을 조사 발표해야 할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계속 담당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김충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예산절감 위주로 하는 정부(발주자)의 편향적 관리행태를 보이는 곳이다.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제도 연구 및 개선 노력은 부재하고 업계 개선요구에 대한 수동적 대응만으로 업무를 수행해왔다. 게다가 공사원가에 대한 지식과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경험은 부재한 기관이다. 지난 10년간 건기연이 위탁업무를 수행하며 보여준 문제점을 봤을 때 그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건설업계는 건기연에 지속적으로 제도운영상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업계의 간절한 요구에 대해 진정성 있는 노력은 소홀히 했다. 또한 정부를 대신해 공사비 산정기준을 관리하는 업무는 원천기술연구개발이라는 건기연 본연의 설립 취지와도 괴리된다.
김상범: 현재의 실적단가를 관리하는 기관에 대한 업계의 불만과 불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국토부에서 추진하는 제3기관 설립이 단기적인 대안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원가관리’라는 분야를 다루는 민간과 공공,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하나의 분야로 자리매김해, 민간과 공공의 다양한 정보제공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건설 공사비 실적정보는 그대로 사장되고 마는 게 현실인데,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우호: 건기연의 조사결과가 전혀 시장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운용기관은 변경해야 한다. 다만 시장가격 형성에 민간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해 지금 같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현재처럼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기관에 의한 가격조사는 계약당사자 일방에 의한 조사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오로지 정부 입맛에 맞는 논리와 가격조사 방식을 제시하고 있어 시장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정부의 획기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민간조사 기관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홍성호: 시장가격은 객관성보다는 전문성 위주로 운용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운용기관은 전문성이 부족하다. 앞으로 표준 시공가격을 조사·발표할 기관은 공사비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코스트(cost) 엔지니어’를 다수 포진한 전문기관이어야 한다. 특정 주체(정부 또는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중립적 기관으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국토부가 추진 중인 ‘건설원가 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폭적인 예산 지원을 전제로 한 신중한 타당성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김한수: 어떤 명칭을 사용하는가에 관계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시행되는 공공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공사비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관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같이 공적인 성격을 지닌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사회 정서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실적공사비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실적공사비를 축적하고 발표하는 특정 공공 연구기관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외국 속담 중에 “메신저는 쏘지 마라(Don‘t shoot the messenger!)”는 속담이 있다. 엉뚱한 사람한테 화풀이하지 말라는 뜻이다. 실적공사비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는 우리 건설산업에 내재돼 있는 신뢰의 문제, 입낙찰제도의 한계성, 발주기관의 인식과 역량 부족, 감사제도의 경직성, 건설기업의 투찰문화 등이 결과적으로 투영된 결과다. 따라서 이를 한 특정 기관에서 모두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해외와 같이 여러 민간조사기관들이 다양한 시장가격을 조사해 발표하는 것도 공사비 데이터의 비교·검증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인정하고 활용할 것인가이다. 결국, 발주기관의 경직성이 문제 아닌가.
단기적인 처방을 위해 현재 제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지수의 변동 내역을 반영해 공종별 실적공사비 단가를 보정한 후, 현실화하는 방안이 있을까?
이우호: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건설공사비지수와 실적공사비 지수 사이의 괴리된 폭만큼을 실적공사비에 가산해 산정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실효성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거푸집, 철근가공조립 등과 같이 시장가격과의 차이가 크면서도 건설공사의 필수공종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가격 정상화 조치가 필요한 부분부터 상향조정해야 한다.
김충권: 현장에서 사용빈도가 높고 단가 수준이 비현실적인 공종을 선정해, 선정된 공종부터 현장조사를 하면 된다. 현장조사 또는 인터뷰를 통해 비정상적인 단가를 검증하고 통계적 유효범위를 설정해 과다 및 과소 단가를 제거한 후 선별된 단가의 산술평균값(예시)을 실적단가로 결정해 조정하는 방식이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이다.
김상범: 현재 상황에서 현실화할 수 있는 특단의 처방은 제도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는 불가능하다. 제도 폐지 없이 시장상황을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또한 ‘특단의 처방’은 일시적인 가격 상승효과를 유도하는 시장 달래기 용도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바람직한 방향은 시장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민간과 공공의 다양한 가격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전문가와 계약담당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유도해 시장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보정될 수 있는 예정가격 선정 체계 구축이다.
홍성호: 현행 실적공사비 제도 아래에서 자재단가, 노무비 단가, 건설공사비 지수 등의 변동 내역을 반영해 공종별 실적공사비 단가를 보정한다 할지라도 공사비가 현실화되지 않을 거다. 기본적으로 실적공사비 산정의 기초자료인 계약단가는 건설사의 낙찰을 위한 전략적 가격이므로 허구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585개 공종에 대한 원도급자 실행단가를 수집해 2013년 하반기 실적단가와 상호 비교해 실적공사비의 정확도를 검토해본 결과에 따르면, ±20% 이상 차이 나는 공종은 전체의 40%(184개)로 조사됐다. 실적공사비가 이른바 가짜 값이므로, 노무비 단가, 자재 단가, 건설공사비 지수 등의 변동 내역을 반영한다 할지라도 현실적인 공사비가 산정되지 않는다.
다만, 실적공사비 단가의 검증 기능을 대폭 강화한다면, 지금보다는 공사비가 다소 상승할 소지는 있다.
김한수: 원론적으로 다양한 지수를 활용하면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실무적으로 쉽지 않다. 다양하고 객관적인 지수를 통계적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공사비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실무적인 어려움이 아니다. 만일 10개의 지수가 만들어지면 아마도 10개 또는 그 이상의 논란거리가 보태질 것이기 때문이다. 끝도 없는 지수의 세분화 요구가 발생하게 된다.
영국의 공공 건설사업에서는 오랫동안 실적공사비제도가 활용돼 왔다. 그렇다면 영국에는 굉장히 정교한 지수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적공사비는 글자 그대로 과거에 투입된 비용에 불과하다. 미래에 투입될 비용을 단순히 지수라는 숫자로 보정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영국 실적공사비제도의 핵심은 실적공사비를 기준가격이 아닌 참고가격으로만 활용하는 기본 전제조건과 코스트 전문가(QS)의 활용을 통해 현실적인 시장가격을 추정하려는 노력이다. 현재 우리 실적공사비제도에는 이 두 가지 핵심이 모두 빠져 있다.
‘적격심사 낙찰제’는 중소업체들의 입찰 참여가 많다. 실적공사비가 현실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공사원가 계산 시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하는 방식에 대한 의견은?
김충권: 적격심사대상 공사의 실적단가 적용비율은 전체공사비 대비 최대 45% 수준에 달해, 보통 20% 내외인 최저가입찰 대상공사보다 상대적으로 더 낮은 예정가격이 산출된다. 특히 실적공사비 적용 공종의 입찰가가 실적단가보다 0.003% 낮으면 입찰무효로 처리하는 최저가공사와 달리 적격심사공사에는 이러한 보완장치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적격심사공사가 최저가공사보다 낙찰률이 높게 형성돼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위의 두 가지 점을 고려한다면 최저가공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사유로 국내 적격심사공사에 주로 의존하는 중소건설업체는 실적공사비로 말미암은 피해가 더 심각한 상황으로 실적공사비의 전면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만약 업계 요구대로 실적공사비를 전면 폐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실적공사비제도 개선과 더불어 적격심사공사에 대해서는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우호: 적격공사에 대하여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여 시공사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김형식: 실적공사비가 중대형 공사의 계약단가로 축적되는 자료로 볼 때 중소규모 공사에서는 실적공사비 적용이 배제돼야 합리적이다
홍성호: 만약 10년간 한시적으로 적격심사 낙찰제 공사에서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할 경우, 9조원(10년×30조원(연간 공공공사 투자비)×20%(실적공사비 비중)×15%(품셈 대비 실적공사비 삭감률)=9조원)의 정부 예산이 증가한다.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계약단가를 기초로 하는 현행 실적공사비가 최저 시장가격을 의미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적격심사제 공사의 실적공사비 적용 공종에도 최저가 낙찰제 공사와 마찬가지로 실적단가보다 일정비율 이하로 투찰 시 낙찰자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정된 예산과 예산 절감 기조, 국민의 시선과 정부의 정책적 판단까지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김한수: 실적공사비제도 개선에 관해 이런 농담이 있다. 만약 실적공사비의 개선 또는 표준시장가격의 활용을 통해 공공 건설공사비가 100% 현실화되면 그 다음의 공격 대상은 적격심사낙찰제도나 최저가낙찰제도라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제도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개의 제도가 정착되고 운용되기까지는 그간의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이 두 개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소건설사를 구제하기 위한 단기적인 처방은 실적공사비 해석에 탄력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것만 해결된다면 굳이 실적공사비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박스1>발주처 역량부족 코스트 전문가 부재가 원인
김한수 “선진국은 왜 문제없이 돌아가겠나?”
실적공사비제도는 원래 시장가격을 적절히 반영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제도였다. 그런 제도가 지금은 공사비의 적정성을 훼손하는 제도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적공사비제도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도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영국에서도 실적공사비제도의 폐해나 개선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 실적공사비제도의 폐해나 개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 미국과 영국의 ‘원본(原本)’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우리나라 ‘사본(寫本)’에서는 이렇게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는 이유를 한번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우리 실적공사비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실적공사비의 해석과 적용의 탄력성 확보, 공사비 전문가 육성 및 활용, 공공 발주자의 상업적 마인드 제고 등이 선행돼야 한다. 이 세 가지만 해결돼도 실적공사비가 시장가격을 반영하는지에 대한 시비를 줄일 수 있고 입낙찰제도에 대고 손가락질할 필요도 없다.
위의 제안이 당장은 너무 파격적이니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보자는 역제안도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적공사비제도를 처음으로 다룬 정책보고서는 1993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대한토목학회, 건설부가 참여한 ‘적산제도 개선방안 연구용역(1단계)’이다. 벌써 20년이나 묵은 보고서다. 신기한 것은 상기 세 가지 제안이 이미 20년 전에 동(同) 보고서에 수록돼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때부터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도입했더라면 지금보다 성숙된 실적공사비제도를 운용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결국 문제는 중장기방안을 마련해 놓고도 단기 방안만 검토한 정부 탓이 크다는 거다.
김상범 “발주자가 유연성과 권한 확보해야”
공공 발주자는 시장의 상황을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민간은 다양한 건설 가격 정보가 존재해야 하며, 시장에서 이러한 원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양성되어야 한다.
공공 발주자는 예정가격의 산정과정에서 민간과 공공의 원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적절한 예정가격의 산정은 한 개의 정답이 존재하는 과학이 아니며, 다양한 정보 활용, 시장 환경에 따른 보정, 관련 전문가 또는 업무 담당자의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예정가격의 산정 기준(현재 실적공사비를 포함하는)과 입낙찰제도의 근간 역시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대의를 이룰 수 있는 방향에서 개선돼야 한다.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관련 집단의 단기적인 이익, 책임 소재 등에 집중할 경우 단기적인 미봉책으로 누더기식 제도가 탄생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는 주무부처, 실적단가 관리기관, 산업계, 관련 협회단체 등 누구 하나의 책임이 아니다. 산업의 원가 관리 경쟁력을 키우고, 합리적인 제도의 도입을 위하여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모든 관련 주체가 머리를 맞대어 합리적인 예정가격 산정 체계가 구축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박스2>제도개선으로 적정낙찰률 회복 도모
Q:입찰제도 손질로 실적공사비 실타래 풀 수 있나?
이우호: 입찰제도 개선에 의한 적정 낙찰률 회복을 위한 방법으로는 현재 법정경비에 대해서만 투찰하한을 적용하고 있는 제도에 이윤항목을 추가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만으로도 약 4~5% 정도의 낙찰률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공종기준금액 산정 시 현재 70% 정도로 반영되고 있는 설계가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낙찰률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김한수: 실적공사비제도는 공사비 예측을 위한 제도이고, 입낙찰제도는 시공자 평가 및 선정을 위한 제도다. 즉, 서로 성격과 목적을 달리하는 제도라는 거다. 따라서 이를 애매하게 혼합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방식이 아니다. 실적공사비제도는 현실적인 공사비 예측이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고, 입낙찰제도는 공정하고 적정한 경쟁이 일어나도록 개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입낙찰제도의 개선을 통해 실적공사비의 적정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양 제도가 올바른 모습으로 바로 서려는 노력에 오히려 저해가 될 수 있다.
홍성호: 실적공사비제도의 문제점과 미흡한 도입 효과의 근본원인은 선진적인 운용기반이 조성되지 않은 탓이 크다. 실적공사비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당초 도입목적을 달성하려면 선진적인 운용기반(건설회사의 성실한 견적 환경, 발주기관 견적 담당자의 재량권 확보 및 전문성 반영, 최적가치 지향의 입낙찰제도)이 반드시 조성돼야 한다.
그러나 선진적인 운용기반은 장기간 투자와 노력, 인식전환이 필요하므로, 현 시점에서 당장 조성하기는 어렵다. 입낙찰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실적공사비제도를 개선하기보다 더욱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성범: 수주업체에서 받는 금액은 예정가격과 낙찰률 두 가지의 변수가 상호작용을 하여 결정된다. 예정가격에 대한 합리적인 체계 구축의 문제와 낙찰률의 문제는 연결지어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목적은 적정 공사비 확보다. 이를 위해서는 입낙찰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가능하겠지만, 입찰제도의 개선은 경쟁촉진과 동반성장 등 시장원리의 보장과 보완 등을 감안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정책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적정 낙찰률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효과 있는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더욱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김충권 : 실적공사비제도 개선 요구의 근본 취지는 공공공사의 “적정공사비 확보”다. 공사비는 예정가격의 산정뿐 아니라 입낙찰제도(낙찰률 등)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적공사비제도 자체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건설사업의 기획ㆍ설계ㆍ입낙찰ㆍ시공 등 전단계에서 합리적인 공사비가 책정되고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따라서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해서는 실적공사비 산정방식의 개선과 더불어 국내 입낙찰제도의 특수성을 감안, 적격심사공사에 대해서는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하거나, 최저가공사와 유사하게 실적공사비 적용공종은 실적단가 그대로 투찰토록 하고 비실적공사비 공종에 대해서만 낙찰률을 산정토록 해 실적공사비의 문제를 일정부분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총사업비 검토, 원가적정성 심사, 지자체 계약심사, 설계VE 검토 등 예산절감을 위한 공사비 삭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사비 검토제도의 개선을 통해 적정공사비 확보 및 공사비 검토 과정의 투명성 제고가 필요하다.
정리=최지희기자 jh60@
사회: 박봉식 건설경제 산업1부장
참석: 김상범 동국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김충권 대한건설협회 기술정책실장
김한수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김형식 대한전문건설협회 기술지원실장
이우호 현대건설 토목견적실장
홍성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Q 계약단가만 활용해 실적단가를 산정하는 현행 방법대신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을 활용토록 국가계약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입법예고됐다.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평가는?
김충권: 이제라도 다양한 가격을 반영한다는 정부 방침은 옳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선진국도 계약단가 외 입찰단가, 시장조사가격 등 시장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거래가격을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계약단가, 입찰단가, 시공단가, 노임 및 자재단가 등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을 수집, 축적해 활용하고 수시로 시장과 시공상황을 조사해 피드백할 수 있는 체계적 공사비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김형식: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을 활용하면 현재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공사비 부족, 부실시공 등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 경우 수집된 공사비 자료 등의 객관적 검증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우호: 다양한 시장거래가격이 있는데도 정부는 지금까지 가장 심하게 왜곡된 최저계약단가를 조사결과에 반영해왔다. 이제부터라도 실제 발생하는 단가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태도다. 다만, 가장 하위시공조직(하도급업체)에서 실제 발생하는 단가는 그야말로 하도급업체에 실제 지급되는 실비일 뿐이다. 낙찰률이나 원도급사의 이윤, 발주기관의 공사비 심사 시 관행적인 예산삭감 등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현행 실적공사비가 지속적으로 현장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것이 실질 물가상승비 반영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롭게 변경되는 실적공사비(또는 시장가격) 제도에서는 반드시 물가상승비 계산에서 실질물가가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홍성호: 정부가 세운 방향은 일단 옳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표준 시장가격을 산정함에서 활용될 공사비 자료의 유형과 산정절차 및 방법이 구체화돼 있지 않아 객관성과 현실성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라 생각된다. 향후의 표준 시장가격은 공사비 자료만을 근거한 객관성보다는 공사비 자료와 엔지니어의 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용돼야 한다. 그 이유는 전수조사가 아닌 이상 편향된 공사비 자료가 수집될 것이 불가피할 것이며, 또한 우리나라의 공사비 자료의 상당수는 왜곡된 것이 많아 공사비 자료만 근거해서는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수집된 공사비 자료만을 가지고 표준 시공가격을 산정한다면, 객관성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김한수: 사실 기존에 계약단가를 활용한 것이 반드시 문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축적된 계약단가를 해당 사업의 특징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었던 경직성, 계약단가를 시장단가에 맞게 해석할 수 있는 발주기관의 역량 부족, 발주기관의 공사비 산정 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 코스트 전문가(예, 영국의 QS) 활용의 부재 등 세 가지라고 본다. 이 세 가지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단가정보 소스(source)의 다양화는 오히려 “어느 단가정보가 맞는가?”라는 새로운 시빗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발주기관 입장에서는 감사나 예산절감을 신경 쓰다 보면 가장 싼 단가를 선택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결국, 단가 활용의 다양화가 어떤 운영 원칙과 시스템을 전제로 하는가가 명확하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태를 단순하게 ‘어떤 가격을 사용하느냐’로 국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적공사비 대신 표준시장가격을 채용한다면, 어느 기관에서 시장가격을 조사 발표해야 할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계속 담당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김충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예산절감 위주로 하는 정부(발주자)의 편향적 관리행태를 보이는 곳이다.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제도 연구 및 개선 노력은 부재하고 업계 개선요구에 대한 수동적 대응만으로 업무를 수행해왔다. 게다가 공사원가에 대한 지식과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경험은 부재한 기관이다. 지난 10년간 건기연이 위탁업무를 수행하며 보여준 문제점을 봤을 때 그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건설업계는 건기연에 지속적으로 제도운영상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업계의 간절한 요구에 대해 진정성 있는 노력은 소홀히 했다. 또한 정부를 대신해 공사비 산정기준을 관리하는 업무는 원천기술연구개발이라는 건기연 본연의 설립 취지와도 괴리된다.
김상범: 현재의 실적단가를 관리하는 기관에 대한 업계의 불만과 불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국토부에서 추진하는 제3기관 설립이 단기적인 대안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원가관리’라는 분야를 다루는 민간과 공공,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하나의 분야로 자리매김해, 민간과 공공의 다양한 정보제공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건설 공사비 실적정보는 그대로 사장되고 마는 게 현실인데,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우호: 건기연의 조사결과가 전혀 시장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운용기관은 변경해야 한다. 다만 시장가격 형성에 민간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해 지금 같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현재처럼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기관에 의한 가격조사는 계약당사자 일방에 의한 조사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오로지 정부 입맛에 맞는 논리와 가격조사 방식을 제시하고 있어 시장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정부의 획기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민간조사 기관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홍성호: 시장가격은 객관성보다는 전문성 위주로 운용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운용기관은 전문성이 부족하다. 앞으로 표준 시공가격을 조사·발표할 기관은 공사비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코스트(cost) 엔지니어’를 다수 포진한 전문기관이어야 한다. 특정 주체(정부 또는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중립적 기관으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국토부가 추진 중인 ‘건설원가 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폭적인 예산 지원을 전제로 한 신중한 타당성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김한수: 어떤 명칭을 사용하는가에 관계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시행되는 공공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공사비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관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같이 공적인 성격을 지닌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사회 정서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실적공사비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실적공사비를 축적하고 발표하는 특정 공공 연구기관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외국 속담 중에 “메신저는 쏘지 마라(Don‘t shoot the messenger!)”는 속담이 있다. 엉뚱한 사람한테 화풀이하지 말라는 뜻이다. 실적공사비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는 우리 건설산업에 내재돼 있는 신뢰의 문제, 입낙찰제도의 한계성, 발주기관의 인식과 역량 부족, 감사제도의 경직성, 건설기업의 투찰문화 등이 결과적으로 투영된 결과다. 따라서 이를 한 특정 기관에서 모두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해외와 같이 여러 민간조사기관들이 다양한 시장가격을 조사해 발표하는 것도 공사비 데이터의 비교·검증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인정하고 활용할 것인가이다. 결국, 발주기관의 경직성이 문제 아닌가.
단기적인 처방을 위해 현재 제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지수의 변동 내역을 반영해 공종별 실적공사비 단가를 보정한 후, 현실화하는 방안이 있을까?
이우호: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건설공사비지수와 실적공사비 지수 사이의 괴리된 폭만큼을 실적공사비에 가산해 산정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실효성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거푸집, 철근가공조립 등과 같이 시장가격과의 차이가 크면서도 건설공사의 필수공종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가격 정상화 조치가 필요한 부분부터 상향조정해야 한다.
김충권: 현장에서 사용빈도가 높고 단가 수준이 비현실적인 공종을 선정해, 선정된 공종부터 현장조사를 하면 된다. 현장조사 또는 인터뷰를 통해 비정상적인 단가를 검증하고 통계적 유효범위를 설정해 과다 및 과소 단가를 제거한 후 선별된 단가의 산술평균값(예시)을 실적단가로 결정해 조정하는 방식이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이다.
김상범: 현재 상황에서 현실화할 수 있는 특단의 처방은 제도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는 불가능하다. 제도 폐지 없이 시장상황을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또한 ‘특단의 처방’은 일시적인 가격 상승효과를 유도하는 시장 달래기 용도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바람직한 방향은 시장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민간과 공공의 다양한 가격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전문가와 계약담당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유도해 시장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보정될 수 있는 예정가격 선정 체계 구축이다.
홍성호: 현행 실적공사비 제도 아래에서 자재단가, 노무비 단가, 건설공사비 지수 등의 변동 내역을 반영해 공종별 실적공사비 단가를 보정한다 할지라도 공사비가 현실화되지 않을 거다. 기본적으로 실적공사비 산정의 기초자료인 계약단가는 건설사의 낙찰을 위한 전략적 가격이므로 허구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585개 공종에 대한 원도급자 실행단가를 수집해 2013년 하반기 실적단가와 상호 비교해 실적공사비의 정확도를 검토해본 결과에 따르면, ±20% 이상 차이 나는 공종은 전체의 40%(184개)로 조사됐다. 실적공사비가 이른바 가짜 값이므로, 노무비 단가, 자재 단가, 건설공사비 지수 등의 변동 내역을 반영한다 할지라도 현실적인 공사비가 산정되지 않는다.
다만, 실적공사비 단가의 검증 기능을 대폭 강화한다면, 지금보다는 공사비가 다소 상승할 소지는 있다.
김한수: 원론적으로 다양한 지수를 활용하면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실무적으로 쉽지 않다. 다양하고 객관적인 지수를 통계적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공사비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실무적인 어려움이 아니다. 만일 10개의 지수가 만들어지면 아마도 10개 또는 그 이상의 논란거리가 보태질 것이기 때문이다. 끝도 없는 지수의 세분화 요구가 발생하게 된다.
영국의 공공 건설사업에서는 오랫동안 실적공사비제도가 활용돼 왔다. 그렇다면 영국에는 굉장히 정교한 지수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적공사비는 글자 그대로 과거에 투입된 비용에 불과하다. 미래에 투입될 비용을 단순히 지수라는 숫자로 보정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영국 실적공사비제도의 핵심은 실적공사비를 기준가격이 아닌 참고가격으로만 활용하는 기본 전제조건과 코스트 전문가(QS)의 활용을 통해 현실적인 시장가격을 추정하려는 노력이다. 현재 우리 실적공사비제도에는 이 두 가지 핵심이 모두 빠져 있다.
‘적격심사 낙찰제’는 중소업체들의 입찰 참여가 많다. 실적공사비가 현실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공사원가 계산 시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하는 방식에 대한 의견은?
김충권: 적격심사대상 공사의 실적단가 적용비율은 전체공사비 대비 최대 45% 수준에 달해, 보통 20% 내외인 최저가입찰 대상공사보다 상대적으로 더 낮은 예정가격이 산출된다. 특히 실적공사비 적용 공종의 입찰가가 실적단가보다 0.003% 낮으면 입찰무효로 처리하는 최저가공사와 달리 적격심사공사에는 이러한 보완장치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적격심사공사가 최저가공사보다 낙찰률이 높게 형성돼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위의 두 가지 점을 고려한다면 최저가공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사유로 국내 적격심사공사에 주로 의존하는 중소건설업체는 실적공사비로 말미암은 피해가 더 심각한 상황으로 실적공사비의 전면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만약 업계 요구대로 실적공사비를 전면 폐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실적공사비제도 개선과 더불어 적격심사공사에 대해서는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우호: 적격공사에 대하여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여 시공사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김형식: 실적공사비가 중대형 공사의 계약단가로 축적되는 자료로 볼 때 중소규모 공사에서는 실적공사비 적용이 배제돼야 합리적이다
홍성호: 만약 10년간 한시적으로 적격심사 낙찰제 공사에서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할 경우, 9조원(10년×30조원(연간 공공공사 투자비)×20%(실적공사비 비중)×15%(품셈 대비 실적공사비 삭감률)=9조원)의 정부 예산이 증가한다.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계약단가를 기초로 하는 현행 실적공사비가 최저 시장가격을 의미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적격심사제 공사의 실적공사비 적용 공종에도 최저가 낙찰제 공사와 마찬가지로 실적단가보다 일정비율 이하로 투찰 시 낙찰자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정된 예산과 예산 절감 기조, 국민의 시선과 정부의 정책적 판단까지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김한수: 실적공사비제도 개선에 관해 이런 농담이 있다. 만약 실적공사비의 개선 또는 표준시장가격의 활용을 통해 공공 건설공사비가 100% 현실화되면 그 다음의 공격 대상은 적격심사낙찰제도나 최저가낙찰제도라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제도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개의 제도가 정착되고 운용되기까지는 그간의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이 두 개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소건설사를 구제하기 위한 단기적인 처방은 실적공사비 해석에 탄력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것만 해결된다면 굳이 실적공사비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박스1>발주처 역량부족 코스트 전문가 부재가 원인
김한수 “선진국은 왜 문제없이 돌아가겠나?”
실적공사비제도는 원래 시장가격을 적절히 반영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제도였다. 그런 제도가 지금은 공사비의 적정성을 훼손하는 제도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적공사비제도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도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영국에서도 실적공사비제도의 폐해나 개선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 실적공사비제도의 폐해나 개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 미국과 영국의 ‘원본(原本)’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우리나라 ‘사본(寫本)’에서는 이렇게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는 이유를 한번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우리 실적공사비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실적공사비의 해석과 적용의 탄력성 확보, 공사비 전문가 육성 및 활용, 공공 발주자의 상업적 마인드 제고 등이 선행돼야 한다. 이 세 가지만 해결돼도 실적공사비가 시장가격을 반영하는지에 대한 시비를 줄일 수 있고 입낙찰제도에 대고 손가락질할 필요도 없다.
위의 제안이 당장은 너무 파격적이니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보자는 역제안도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적공사비제도를 처음으로 다룬 정책보고서는 1993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대한토목학회, 건설부가 참여한 ‘적산제도 개선방안 연구용역(1단계)’이다. 벌써 20년이나 묵은 보고서다. 신기한 것은 상기 세 가지 제안이 이미 20년 전에 동(同) 보고서에 수록돼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때부터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도입했더라면 지금보다 성숙된 실적공사비제도를 운용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결국 문제는 중장기방안을 마련해 놓고도 단기 방안만 검토한 정부 탓이 크다는 거다.
김상범 “발주자가 유연성과 권한 확보해야”
공공 발주자는 시장의 상황을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민간은 다양한 건설 가격 정보가 존재해야 하며, 시장에서 이러한 원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양성되어야 한다.
공공 발주자는 예정가격의 산정과정에서 민간과 공공의 원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적절한 예정가격의 산정은 한 개의 정답이 존재하는 과학이 아니며, 다양한 정보 활용, 시장 환경에 따른 보정, 관련 전문가 또는 업무 담당자의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예정가격의 산정 기준(현재 실적공사비를 포함하는)과 입낙찰제도의 근간 역시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대의를 이룰 수 있는 방향에서 개선돼야 한다.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관련 집단의 단기적인 이익, 책임 소재 등에 집중할 경우 단기적인 미봉책으로 누더기식 제도가 탄생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는 주무부처, 실적단가 관리기관, 산업계, 관련 협회단체 등 누구 하나의 책임이 아니다. 산업의 원가 관리 경쟁력을 키우고, 합리적인 제도의 도입을 위하여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모든 관련 주체가 머리를 맞대어 합리적인 예정가격 산정 체계가 구축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박스2>제도개선으로 적정낙찰률 회복 도모
Q:입찰제도 손질로 실적공사비 실타래 풀 수 있나?
이우호: 입찰제도 개선에 의한 적정 낙찰률 회복을 위한 방법으로는 현재 법정경비에 대해서만 투찰하한을 적용하고 있는 제도에 이윤항목을 추가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만으로도 약 4~5% 정도의 낙찰률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공종기준금액 산정 시 현재 70% 정도로 반영되고 있는 설계가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낙찰률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김한수: 실적공사비제도는 공사비 예측을 위한 제도이고, 입낙찰제도는 시공자 평가 및 선정을 위한 제도다. 즉, 서로 성격과 목적을 달리하는 제도라는 거다. 따라서 이를 애매하게 혼합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방식이 아니다. 실적공사비제도는 현실적인 공사비 예측이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고, 입낙찰제도는 공정하고 적정한 경쟁이 일어나도록 개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입낙찰제도의 개선을 통해 실적공사비의 적정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양 제도가 올바른 모습으로 바로 서려는 노력에 오히려 저해가 될 수 있다.
홍성호: 실적공사비제도의 문제점과 미흡한 도입 효과의 근본원인은 선진적인 운용기반이 조성되지 않은 탓이 크다. 실적공사비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당초 도입목적을 달성하려면 선진적인 운용기반(건설회사의 성실한 견적 환경, 발주기관 견적 담당자의 재량권 확보 및 전문성 반영, 최적가치 지향의 입낙찰제도)이 반드시 조성돼야 한다.
그러나 선진적인 운용기반은 장기간 투자와 노력, 인식전환이 필요하므로, 현 시점에서 당장 조성하기는 어렵다. 입낙찰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실적공사비제도를 개선하기보다 더욱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성범: 수주업체에서 받는 금액은 예정가격과 낙찰률 두 가지의 변수가 상호작용을 하여 결정된다. 예정가격에 대한 합리적인 체계 구축의 문제와 낙찰률의 문제는 연결지어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목적은 적정 공사비 확보다. 이를 위해서는 입낙찰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가능하겠지만, 입찰제도의 개선은 경쟁촉진과 동반성장 등 시장원리의 보장과 보완 등을 감안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정책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적정 낙찰률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효과 있는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더욱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김충권 : 실적공사비제도 개선 요구의 근본 취지는 공공공사의 “적정공사비 확보”다. 공사비는 예정가격의 산정뿐 아니라 입낙찰제도(낙찰률 등)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적공사비제도 자체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건설사업의 기획ㆍ설계ㆍ입낙찰ㆍ시공 등 전단계에서 합리적인 공사비가 책정되고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따라서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해서는 실적공사비 산정방식의 개선과 더불어 국내 입낙찰제도의 특수성을 감안, 적격심사공사에 대해서는 실적공사비 적용을 배제하거나, 최저가공사와 유사하게 실적공사비 적용공종은 실적단가 그대로 투찰토록 하고 비실적공사비 공종에 대해서만 낙찰률을 산정토록 해 실적공사비의 문제를 일정부분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총사업비 검토, 원가적정성 심사, 지자체 계약심사, 설계VE 검토 등 예산절감을 위한 공사비 삭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사비 검토제도의 개선을 통해 적정공사비 확보 및 공사비 검토 과정의 투명성 제고가 필요하다.
정리=최지희기자 jh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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