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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실적공사비에 멍드는 서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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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29회 작성일 14-09-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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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설비·자재·장비업계 사지로 내몰아…현장 근로자 안전도 위협받아

 #1. 충남에서 10여년간 토공사업을 영위해 온 전문건설업체인 A사는 창사 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주된 사업영역인 공공부문에 일감이 줄어든 데다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에 하도급을 받아 현장 관리비를 남기지 못하는 상황이 잇따라 빚을 내며 근근히 버티고 있다. 이 회사는 그나마 시공 중인 현장이 모두 완공되는 이번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2. 경북 상주의 포크레인 사업자 J씨는 얼마 전 법원에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그 동안 지역의 전문건설업체로부터 하청받아 포크레인 사업을 영위했으나, 늘어난 빚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전문건설업체와의 계약금액이 현실에 못 미치는 사례가 되풀이되면서 고리의 사채를 이용하는 바람에 더 이상 생업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10년 전 공공 건설공사에 도입한 ‘실적공사비’가 전문 및 기계설비공사업계는 물론 이들과 거래하는 건설산업 생태계의 기반이자, 최하위 계층인 자재 및 장비업자, 현장 근로자의 생계마저 옥죄고 있다.

 토공사업체인 A사 관계자는 “원도급자가 저가 수주한 뒤 시장가격보다 낮게 하도급공사를 발주하고, 이를 다시 저가로 하도급받아 실제 계약금액은 실적단가에 못 미치는 현실”이라며 “토목공종인 무근 콘크리트타설의 경우 펌프카·슬럼프15를 하루 100㎥ 이상 가동하는데 시장가격은 1만7000원인데 실적단가는 40% 가량 낮은 9966원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실적단가가 시장가격보다 낮아 노임과 자재와 장비비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업계 관계자도 “건축공종도 거푸집(거친 마감)의 경우 0~7m 규격의 ㎡당 시장가격은 3만3775원인데 실적단가는 반토막인 1만6799원에 불과하다”며 “상당 수의 전문업체가 이로 인한 적자를 다른 현장에서 남은 수익이나 담보 또는 신용대출을 받아 막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부도로 이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기계설비공사업종도 마찬가지로, 그나마 이들이 하도급공사를 온전히 수행하면 다행이다.

 이들이 현장 원가를 확보할 수 없어 불법적으로 재하도급을 주면 공사비는 더 낮아질 수 밖에 없고, 이럴 경우 하도급 공사비는 당초 대비 60%대로 급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산업 생태계에서 최하위 계층인 자재와 장비업자들은 대부분 영세한 개인사업자들로, 하도급업자로부터 낮은 금액에 더 많은 납품과 작업을 요구받는 사례가 많은데 당장의 생계 유지를 위해 이를 거절할 수 없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포크레인 사업자인 J씨는 “장비업자들은 할부를 통해 장비를 구매해 운영하는데 하도급자는 원가를 확보할 수 없다며 낮은 비용으로 계약체결을 요구하거나, 하루 1시간 더 가동해달라는 요구를 한다”며 “이들은 나중에 원가율이 낮은 현장에 투입해 주겠다며 말하지만, 그런 현장은 드물고 대부분이 적자 현장이라 대출을 받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고리의 사채를 빌려 쓰는 수순을 밟게 된다”고 성토했다.

 자재업계에 종사하는 H씨도 “자재 판촉과 홍보를 위해 자비를 들여 사전에 일정 물량을 제작하거나 구매하는데 최근 경기 침체 및 중국산 자재 공급 확산으로 판로가 축소됨에 따라 선투입 비용을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 저가로 공급하는 실정”이라며 “또 일부 하도급업체는 적은 금액에 더 많은 물량 납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잦아 재무건전성을 악화시켜 부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종합 및 전문건설업자는 실적공사비로 인한 폐해로 품질 및 안전관리 보다 원가관리에 몰두하다 보니 현장 근로자의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한 전문업계 관계자는 “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로 사회전반에 안전의식이 많이 고취되었지만,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해 실적공사비로 박해진 현장의 원가 확보에 치중하다 보니 일선 현장 근로자의 안전관리가 뒤켠으로 밀리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건설산업계를 짓누른 실적공사비를 하루 빨리 걷어내 건설현장에도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희찬기자 c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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