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 입찰행정 논란] (2)전력거래소는 어떻게 멀쩡한 건설사를 무너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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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308회 작성일 23-04-20 09:28본문
[대한경제=임성엽 기자] ‘제주본부 신사옥 건설공사’ 시공사인 A건설사는 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상위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 감사, 감사원 감사, 공정거래위원회 민원 제기,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 신청 등 전 방위적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A사가 피해 구제에 나선 이유는 회사의 ‘생존’ 때문이다. 전력거래소의 지체상금 부과부터 공기연장 불인정, 늑장 에스컬레이션(E/S) 등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발주기관의 행태에 중소 A건설사는 이번 사업으로 30억원 이상의 손실을 떠안을 위기에 놓였다.
◇공기 산정부터 엉터리
19일 건설업계와 전력거래소 등에 따르면, 이 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112억원 규모의 이 사업 공사기간은 540일로 정해졌다. 조달청 공사기간 산정 기준 등에 따르면 100억원 이상 사업은 최소 900일의 기간이 산정됐어야 한다는 게 A사의 설명이다. 이는 국토교통부의 훈령 별표 4, 시설물별 공사기간 산정공식에 따라 총 공사비와 건물 규모로 적정 공기를 산정한 수치다. 실제 육지에서 수행하는 유사 규모의 관급 공사도 850일로 설정된 바 있는데, 심지어 도서지역인 제주도에서 540일의 공사기간은 1년 가까이 적다.
특히 전력거래소는 540일에 해당하는 세부공기 산정근거도 나라장터 등에 공고하지 않았다는 게 A사의 주장이다. A사 관계자는 “전력거래소가 적정 공사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준공될 건물에 설치될 전력 관련 IT 장비 반입일과 운영일에 맞춰 공사 기일을 정했다면, 국토부 적정 공사기간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 상 발주자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차수별 공사 계약 진행 방식도 문제다. A사는 지난 2021년 9월 1일 전력거래소와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전력거래소는 1차 계약으로 공기 122일에 총 공사비 37%에 해당하는 금액을 요구했다. A사 관계자는 “1차 계약의 공기는 총 공사기간의 23%, 공사비의 37%로 도저히 불가능한 계약조건이라고 얘길 하니 전력거래소에서 회계상으로 맞춰놓은 것뿐이지, 나중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사 측의 증언과는 반대로, 전력거래소는 1차 공사 계약일이 도래한 이후, 합당한 공기연장 없이 즉시 지체상금을 물리고 있다.
지난해 전력거래소는 이른바 ‘노사합동 건설추진단’을 결성했다. 직원이 직접 안전모니터링과 설계, 건설 과정에 참여했다. 실제 건설추진단은 신사옥 건설현장을 찾아 안전컨설팅을 하고 개선사항을 발굴했다고 한다. 전력거래소는 맞춤형 안전관리체계 구축에 기여했다고도 자평했다.
전력거래소의 이 같은 ‘자화자찬’은 표리부동의 증거로 남았다. 애초 엉터리로 설계된 공사기간 탓에 전력거래소 스스로 시공사의 중대재해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애초 모자라는 공사기일과 공사 만회 독촉에 굴삭장비 M10 기준 5대, 25톤 덤프 최대 13대를 배치해 작업을 시켰다”며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천운일 정도로 위험한 공정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인허가 잘못 해놓고 지체상금 물리는 전력거래소
발주기관인 전력거래소의 귀책도 드러났다. A건설사는 지난 2021년 9월 착공 후 시공에 큰 차질을 빚었다. 공사차량 진출입로를 설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력거래소가 부지 건축 허가 시 가감속차로 도로점용기간을 착공 1년 뒤인 2022년 9월1일로 설정한 탓이다. 도로점용 허가신청은 발주기간인 전력거래소가 주체다. A사 관계자는 “발주기관이 인허가를 잘못 받아 공기가 연장됐는데, 인허가 책임까지 회사에 떠넘겼다”며 “발주기관 때문에 공정 부진이 발생했는데, 건설사에 부진 공정을 만회하라며 계속 압박을 했다”고 말했다.
부진공정에 대한 만회대책 수립요청은 발주기관의 전형적인 면피성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공정 부진에 대해 함께 논의해볼 생각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대책 수립만 요청한 것은, 공공기관 직원 개인의 면피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 현장상황은 불구경하듯
이처럼 발주기관인 전력거래소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건설현장 상황을 불 보듯 구경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A사는 1차 에스컬레이션(E/S) 신청을 지난해 4월27일 했다. 하지만 E/S 승인일은 올해 1월 8일.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업무가 8개월 걸리는 사례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한 입찰 전문가도 “E/S는 건설자재가 급격히 변동할 때 신청하는 제도인데다 기준과 수치만 맞으면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E/S가 8개월 걸린 경우는 들어보지도 접해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E/S 업무가 8개월 걸리는 바람에 A사는 하도급 업체에 물가변동에 따른 비용 지급을 못 해 하도급업체가 작업을 중지하는 등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었다는 설명이다.
공정 중 발생한 암석을 처리하는 과정도 졸속으로 진행됐다. A는 터파기 공사 중 암석량이 설계량보다 135% 증가해 전력거래소에 공사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암의 종류는 암 판정위원회에서 판정한다. 이 암 판정위원회가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게 A사 측의 설명이다. A사 관계자는 “암 판정위원회에서 육안으로 연암 판정을 내렸다”며 “시료를 채취, 공인시험기관에 의뢰한 결과 극경암, 경암으로 판정을 받았음에도 턱없이 부족한 공사일수(35일)만 연장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시도 무시하는 전력거래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전력거래소가 중앙부처의 지시까지 무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화물연대파업과 레미콘업체 파업으로 제주지역 레미콘 수급불량이 발행하자, 정부는 공기 연장은 물론 제반경비도 증액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전력거래소는 총 연장기간 127일 중, 단 41일만 연장했다. 제반경비 증액은 무시했다는 게 A사 측 설명이다.
A사 관계자는 “레미콘은 관급자재로 지급의무가 발주자에게 있다. 하지만, 제주지역 레미콘 수급 차질로 자재 수급이 지연될 당시에, 시공사의 품질관리자가 레미콘 업체에 수십 차례 전화해 수급 일정을 협의했다”며 “발주처에서는 레미콘공장에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을 정도로 시공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고 말했다.
임성엽 기자 starleaf@ <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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