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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침몰하는 엔지니어링號 2부-① 공정성 의심 받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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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12회 작성일 14-12-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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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국토부 신설 '용역평가제' 채점표 봤더니...발주기관 주관 평가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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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교통부가 전면 개정해 5월부터 시행한 건설기술진흥법은 업계에서 ‘관피아 지뢰밭’으로 불린다. 건진법은 일단 업무 중복도로 업체를 옭아매 국토부 및 발주기관 출신 퇴직 기술자를 영입하지 않으면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현재 업계 전반이 신규채용을 일시 중단하고, 10년 미만 기술자들의 구조조정을 고려 중이다.

 국토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우수건설기술용역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거다. 명확한 성과물이 나오는 시공업계에서도 하지 않는 평가제도를 기술용역업계에 적용해,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에는 모든 발주처의 PQ에서 1∼2점에 달하는 가산점을 부여할 계획이다.

 한 마디로 ‘우수건설기술용역업자’로 선정되지 않으면 앞으로 사업 수주는 어렵다는 얘기다.

 언뜻 들으면 ‘사업 수행을 잘한 업체’에 가산점을 주는, 다시 말해 시장논리에 따른 공정한 제도같이 보인다. 일견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들에 유리한 법안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업체가‘사업 수행을 잘했는지’의 판단 여부는 전적으로 국토부와 발주기관에 달려 있다.

 평가 채점표의 17개 항목이 전부 ‘충실성’,‘성실한 응답’이란 주관적 요소로 이뤄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건설경제>가 전체 건설기술용역 업체 중 PQ를 참여하는 123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업체 모두 ‘우수건설기술용역업자’선정 제도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업계에서 해당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들이 대·중·소 등 규모와 지역을 가지리 않고 모두 반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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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점 만점 채점표 자세히 봤더니

 우수용역업자로 선정되려면 일단 신설된 ‘종합평가제도’에서 상위 20% 이내에 들어야 한다. 종합평가점수는 업체별 용역평가점수(80%)와 용역능력평가점수(20%)의 합산이다.

 용역능력평가는 경영능력과 신인도, 기술능력에 따라 점수를 준다. 현재의 시공능력평가와 거의 유사한 개념이다. 무리가 없는 내용이어서 업계에서도 용역능력평가 부분에는 수긍하고 있다.

 문제는 종합평가의 80%를 차지하는‘용역평가점수’다.

 용역평가점수는 현재 각 발주기관별로 매년 시행하는 우수시공업자와 우수용역업자 선정을 용역 부분만 국토부 기준에 맞춰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다.

 A라는 용역사가 한 해 수행하는 사업이 500건이면 각 500건 별로 발주기관의 용역평가를 받아 해당 점수를 모두 합산해 평균치(100점 만점)를 내는 식이다.

 각 발주기관은 국토부가 나눠준 채점표에 따라 용역평가 결과를 매년 3월 말까지 국토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채점표가 문제다.

 국토부가 발표한 채점표를 받아 든 업체들은 황당함을 넘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채점 항목 17개가 모두 발주기관이 주관에 휘둘리는 정성적 평가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총 101점 만점의 채점표에 따르면 가장 배점(10점)이 높은 항목은 총 3개다.

 ‘사전조사의 충실성(10점)’, ‘지반조사의 충실성(10점)’, ‘발주청 요청사항 응답의 충실성(10점)’ 등이다.

 ‘충실성’이란 단어 자체가 상당히 모호한 개념어인데 이를 또 우수, 양호, 보통, 미흡, 불량 등 5개 등급으로 점수를 나눈다. 등급 구간별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혀 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구간별로 사전조사 성과품을 조사해 오차범위별로 구간을 나누는 등의 정량적 기준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은 셈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21개 대형사 및 지역사 업체 임원들은 “채점표를 받아든 순간 기가 막혔다”며 “충실성이 아니라 발주기관에 대한 충성도를 보겠다는 의도로 읽혔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17개 채점 항목 중 ‘충실성’으로 평가 받는 항목이 7개에 달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발주기관의 요청사항에 얼마나 ‘충실히’ 응답하는지를 채점하는 항목이 추가로 5개에 달한다. ‘아이디어 제안의 적극성(3점)’과 ‘참여 기술자의 각종 회의 및 설계검토 등의 성실한 참여 여부(3점)’, ‘설계관련 일정의 준수 여부(발주기관 보고 및 요청사항 기한 포함·4점)’ 등이 그 예다.

 ‘충실성’이란 단어만 사용하지 않았지, 문맥적 의미가 발주기관의 주관적 평가다.

 업계 한 중견사 대표는 “솔직히 말해서 이번 채점표는 ‘발주기관에 로비 좀더 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며 “결국 용역이 시작할 때는 수주 때문에 발주기관에 굽실거리고, 용역이 끝나면 발주기관에 잘 보이려 또 굽실거려야 한다. 상식적으로 굽실거리러 갈 때 빈손으로 가겠느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대형사 임원은 “용역평가로 PQ 가산점 여부가 결정된다면, 업계 입장에서는 업무 중복도용 관피아와 용역평가용 관피아를 영입해야 한다”며 “금품 및 향응제공 외에도 해당 발주기관 퇴직자가 인사 오는 업체에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채점표가 짜여 있다”고 토로했다.

 ◆ 발주기관 퇴직자 영입하거나...발주기관으로 영업 다니거나



  국토교통부가 지난 11월 종합능력평가제 시행을 앞두고 업계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았을 때만 해도, 업계에는 기본과 실시설계로 나뉜 발주기관의 평가표가 공개되지 않았다.

 공청회 과정에서는 종합능력평가제의 윤곽에 대한 이야기만 오갔지 기본설계 평가표(101점 만점), 실시설계 평가표(100점 만점) 등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지 못했다.

 작년 12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발주기관과 업계 대표를 불러 논의할 때도 101점 만점의 엉성한 평가표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던 셈이다.

 건설기술진흥법이 전면 개정하며 업무 중복도 강화, 하도급법 신설 등 굵직한 제도가 급격히 변화하며 국토부와 업계 모두 혼선을 빚었던 탓도 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업계는 주요 사안의 세부내용을 전혀 모르는 채 시간만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고, 지난 4월 국토부가 입법예고를 하고 나서야 평가표의 내용을 알게 됐다.

 평가표를 받아든 업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7개 항목으로 구성된 평가표 내용 전체가 발주처의 주관에 따른 정성적 평가였기 때문이다.‘발주청 요청사항 응답의 충실성(10점)’ 같은 항목이 대표적인 예다.

 국토부는 해당 항목에 대해 ‘발주청 및 관계기관의 질의 및 요청·지시사항 등에 대한 응답의 충실성’을 보겠다고 명시했다.

 업계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현재도 발주기관의 불합리한 업무지시와 과외업무, 시도 때도 없는 용역 중지와 재개 과정에서 일방적인 피해를 보는 상황에 국토부가 발목에 족쇄까지 건 셈이다.

 지역의 중견사 임원은 “업계는 건진법이 통과될 때만 해도 국토부에 발주기관의 불합리한 업무 지시 관행 철폐를 건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국토부가 역으로 업계에 노예 계약서를 들이밀었다”며 “결국, 발주기관의 용역평가에 따라 전 공공사업의 PQ 가점 1∼2점이 왔다갔다 한다면 업계의 발주기관에 대한 예속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PQ 대상의 업체들은 모두 용역평가제가 또 다른 이름의 ‘관피아 법’이라 입을 모았다.

 대형사 임원은 “용역사가 제출하는 성과품의 양은 5억원짜리 사업 하나만 봐도 A4박스 수십개가 나온다”며 “매년 600여개 이상의 사업을 하는 대형사 처지에서 매 용역이 끝날 때마다 최소 5명 이상의 평가위원에게 수십 개의 성과품 박스를 갖고 찾아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가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결국 밥이라도 한번 더 사야 하는 상황이 빚어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평가위원 중 발주기관 담당자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각 발주기관의 퇴직자 영입에 대한 압박까지 받고 있다.

 사업범위가 넓은 대형사의 경우는 ‘관피아’를 영입하든, 발주기관에 금품 및 향응을 접대하든 영업비용이 과거보다 2∼3배 이상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대형사 대표는 “국토부가 건진법을 통해‘관피아를 영입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며 “이번 용역평가 관련 연구용역을 맡은 건설기술연구원과 중앙대 교수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국토부는 이들이 갖고 온 연구 내용을 제대로 검토할 능력이 부족했고, 동시에 제대로 된 공청회를 거쳐 업계 의견을 수렴하려는 행정적 성실성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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