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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대통령의 시간과 건설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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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76회 작성일 15-02-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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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정경부 차장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출간한 ‘대통령의 시간’을 놓고 말들이 많다. 금융위기 극복과 자원외교 성과 등을 담은 이 회고록에 대해 MB 측은 정책에 초점을 두고 집필한 최초의 자서전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자화자찬에 불과하다거나 국가기밀 누설이 아니냐는 비난에다 출간 의도에 대한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호평보다 혹평이 많다.

 건설인이 기억하는 MB의 재임기간, ‘대통령의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2007년 말 MB가 당선되자 업계의 기대는 컸다.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정치인이나 군인 일색이었던 역대 대통령과 달리 산업계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곳이 바로 건설산업이었으니 자부심을 느낄 만 했다. 건설을 잘 아니 건설인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리라는 기대도 당연했다.

 기대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장수만 전 조달청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내가 조달청장을 하면 예산을 10% 절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업계에 유명하다. 이후 공사입찰에는 10% 삭감이 공식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삭감은 10%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자체 등이 공사비를 10% 깎아 입찰을 의뢰하면 조달청은 여기서 10%를 또 삭감해 발주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업계는 하소연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이전 100억원에 나올 공사가 81억원에 나오게 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최저가낙찰제 등으로 다시 공사비가 깎이니 건설사는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 되자 MB가 자주 말했던 “내가 해봐서 아는데”에 대해 업계에서는 “아는 놈이 더하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원로 건설인은 MB가 옛날 건설만 알았지 요즘 건설은 몰랐다고 지적한다. 성장기 때처럼 지금도 건설이 이익을 많이 남긴다고 오판했다는 것이다. 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못 안 것이 문제였던 셈이다.

 지난 정권 시절 토건사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된 것은 건설산업에 치명타를 입혔다. 삼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핸드폰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비약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건설산업에 대해서는 기업의 생산물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사업의 필요성을 따지기 이전에 ‘국민’이 아닌 ‘누군가’의 배를 불리기 위한 사업이 아니냐는 의심부터 하고 보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건설업계의 일감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가 ‘재미 좀 봤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일을 많이 했으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4대강사업으로 돈 벌었다는 건설사를 찾기 어렵다. 국가가 하라는 대로 임기 내 준공을 위해 주·야간 교대로 사업을 완료했지만, 결과는 적자 수준이었다. 게다가 입찰담합으로 과징금까지 물게 됐다.

 담합에 대해 업계는 말 못하는 속병을 앓고 있다. 4대강사업은 공사는 물론 입찰도 유례없는 속도전으로 진행됐다. 설계기간이 부족할 정도로 입찰을 서둘렀고 정부가 건설사들을 모아놓고 설명회까지 했다. 일부 업체는 이를 담합의 묵인으로 읽었다. 최근 한 건설사는 관련 소송에서 당시 정부가 담합을 조장 내지 묵인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설사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어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7년여 전 건설업계가 건설인 대통령에 대해 가졌던 자부심과 기대는 현재 온전치 못하다. 이 전 대통령의 말처럼 4대강사업이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업에 참여했던 건설사가 얻은 것은 적자와 과징금, 이미지 실추다. 잃은 게 너무 많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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