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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담합 매듭과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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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148회 작성일 15-02-1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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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식 산업1부장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은 원래 풀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상은 알 수 없다. 잘렸기 때문이다. 이 매듭은 기원전 8세기 터키 부근의 고대국가인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가 제우스에게 바칠 마차를 신전에 묶으며 아무나 풀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리고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주변 왕이나 영웅들이 매듭을 풀고자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수백년이 지난 후 아시아 원정길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더는 매듭을 잘라버린다.

건설에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있다. 담합 매듭이다. 너무 얽히고설켜 있어 풀리지 않는다. 담합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징금도 천문학적 규모다. 그러나 제대로 마무리된 것은 드물다. 건설사들은 억울하다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잇따라 내고 있다. 과징금과 세트메뉴(?)인 부정당업자 제재도 원점을 맴돌고 있다. 기관별로 처분을 위한 계약심의위원회가 열리고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담합 판정의 근거가 되는 공정거래법과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내리는 건설산업기본법, 국가계약법 등의 규정이 상충한 탓이다. 공정위가 담합으로 제재를 내린 사안에 대해 법원은 정보교환을 위한 모임만을 담합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매듭이 풀리지 않는 것은 담합 판정에 대한 원초적 부실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담합이 범법행위임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제재에는 강하게 반발한다. 자발적인 면도 있지만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이다. 정부가 국책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할당식으로 분배한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공정거래법,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 건설산업기본법, 형법 등에 분산돼 있어 처벌의 중복은 물론 지나치게 무겁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포괄적 해석에 의한 주관적 판단으로 담합 판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담합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고 인식한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 등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한 셈이다.

정부에서도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다. 5년이 지난 담합사건에 대해서는 입찰참가 제한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담합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온 1사1공구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사안별 위반 행위의 중대성을 고려해 제재 범위 및 기간을 판단하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단 1건의 담합이 적발되더라도 2년간 모든 공공공사 입찰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한 현행 제도가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사안별로 경중을 따져 제재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필요하고 시급한 조치라는 평가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공능력 기준 상위 100대사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개사가 담합으로 거액의 과징금은 물론 부정당업자로 지정돼 공공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건설사는 물론 학계, 정치권 등에서도 처분과 제재의 불합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어떤 합리적인 주장도 ‘법 집행의 공정성’이라는 논리 앞에서는 하릴없이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과거에 발목이 잡혀 산업의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불확실성은 더욱 힘들게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고르디우스 매듭을 잘랐다. 풀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게다. 풀다(untie)의 개념이 아니라 해결의 의미를 두는 창조적 선택을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통일과 규제개혁 문제를 언급하며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어버리듯이 과감하게 달려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건설의 담합 매듭은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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