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발주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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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89회 작성일 15-03-30 09:32본문
장경순 (서울지방조달청장)
지난 2월 부임 인사차 대한건설협회와 전문건설협회를 방문했다. 최근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건설협회에서는 공사용 자재를 공사에서 분리해 별도로 발주하는 제도, 주계약자 방식 공동도급 등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전문건설협회에서는 주계약자 공동도급 제도가 확대되어야 하고, 전문건설업체가 단독으로 시공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도급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건설산업의 생산 특성을 고려한다면 건설협회의 주장이 타당하다. 반면 제값 받기나 불공정 하도급에 대한 제어 장치 측면에서는 전문업계의 건의 내용이 설득력이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공사용 자재 분리발주 제도를 전폭 지지하면서 건설업계와 대립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성기업이나 장애인 사업장 등도 공공조달 시장에의 참여 몫을 넓히기 위해 열심이다. 각종 ‘협회’에서는 국회와 법령 주무관청에 건의하고 때로는 압력을 행사하면서 법령을 개정, 수요를 만들어낸다. 불리한 개정안은 간담회나 공청회 등의 경로를 통해 저지하기도 한다.
다양한 공급자들의 입장과 가치가 달라서 스스로 조정하고 합의하기가 어렵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 건설 등을 담당하는 정책 기관에서도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답을 줄 수는 없다. 각각의 정책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충돌에 대한 가치 판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찰을 최소화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안이 있을까? 발주자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공공사업의 발주자는 법과 규정에 따라 사업을 집행한다.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최고의 가치를 제시하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제공할 수 있는 품질이 동일하다면 최저의 가격을 제시하는 공급자를 선택한다. 품질이 중요하다면 비싸더라도 좋은 품질을 제공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여야 한다. 공공조달의 기본이다.
그러나 발주자는 최고 가치 외에도 다양한 정책적 요구 사항을 무시할 수 없다. 녹색제품의 구매, 지역 업체의 참여 촉진, 제값 주기, 공정한 하도급 문화 정착 등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들은 법령에 반영되어 발주 관서에서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수많은 정책적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려면 발주자는 ‘동그란 네모’를 그려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발주기관에서 나름 발주 환경이나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발주 방법을 결정하면 업계에서는 이의를 제기한다. 발주 관서는 법령에 대한 유권 해석을 요청한다. 그러나 법령 주관 부서에서도 뚜렷한 답을 줄 수는 없다. “상황을 고려하여 발주기관에서 적의 판단”할 사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발주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소송으로 번지기도 한다.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흑도 백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발생한다는 특성 때문이다. 회색지대는 ‘재량’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달에서 ‘재량’은 불투명·불공정·부패와 동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특정 업계의 이익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 발주자는 민원과 감사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발주자 스스로도 재량에 대한 부담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은 제3자에게 맡기고 개입하지 않는다. 조달시장은 각 업계의 목소리와 주장으로 포화상태이다.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조달시장에서 분쟁은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띠며 증가하고 있다. 분쟁의 회색지대에서 명확한 방침을 내리고 결정해야 할 제1차 주체는 발주자이다. 사업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집행하는 최일선 창구이기 때문이다. 조달 시장에서 서로 충돌하는 정책적 가치를 조정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도 발주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발주자의 제대로 된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건설업계에서 오랜 기간 있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주자의 적극적 역할’은 요원하다. 발주자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문화와 환경, 관행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발주자의 역할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사업의 특성에 맞게 자기 책임 하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발주자가 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조달시장 참여자들은 발주자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때이다.
매년 공공 조달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 내외를 차지한다. 2014년 우리나라의 공공 조달 시장 규모는 125조원으로 국내 총생산액 대비 8.5%에 이른다. 이렇게 거대한 조달시장이 효율적인 생태계로 탈바꿈하기 위해 발주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지난 2월 부임 인사차 대한건설협회와 전문건설협회를 방문했다. 최근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건설협회에서는 공사용 자재를 공사에서 분리해 별도로 발주하는 제도, 주계약자 방식 공동도급 등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전문건설협회에서는 주계약자 공동도급 제도가 확대되어야 하고, 전문건설업체가 단독으로 시공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도급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건설산업의 생산 특성을 고려한다면 건설협회의 주장이 타당하다. 반면 제값 받기나 불공정 하도급에 대한 제어 장치 측면에서는 전문업계의 건의 내용이 설득력이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공사용 자재 분리발주 제도를 전폭 지지하면서 건설업계와 대립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성기업이나 장애인 사업장 등도 공공조달 시장에의 참여 몫을 넓히기 위해 열심이다. 각종 ‘협회’에서는 국회와 법령 주무관청에 건의하고 때로는 압력을 행사하면서 법령을 개정, 수요를 만들어낸다. 불리한 개정안은 간담회나 공청회 등의 경로를 통해 저지하기도 한다.
다양한 공급자들의 입장과 가치가 달라서 스스로 조정하고 합의하기가 어렵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 건설 등을 담당하는 정책 기관에서도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답을 줄 수는 없다. 각각의 정책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충돌에 대한 가치 판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찰을 최소화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안이 있을까? 발주자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공공사업의 발주자는 법과 규정에 따라 사업을 집행한다.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최고의 가치를 제시하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제공할 수 있는 품질이 동일하다면 최저의 가격을 제시하는 공급자를 선택한다. 품질이 중요하다면 비싸더라도 좋은 품질을 제공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여야 한다. 공공조달의 기본이다.
그러나 발주자는 최고 가치 외에도 다양한 정책적 요구 사항을 무시할 수 없다. 녹색제품의 구매, 지역 업체의 참여 촉진, 제값 주기, 공정한 하도급 문화 정착 등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들은 법령에 반영되어 발주 관서에서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수많은 정책적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려면 발주자는 ‘동그란 네모’를 그려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발주기관에서 나름 발주 환경이나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발주 방법을 결정하면 업계에서는 이의를 제기한다. 발주 관서는 법령에 대한 유권 해석을 요청한다. 그러나 법령 주관 부서에서도 뚜렷한 답을 줄 수는 없다. “상황을 고려하여 발주기관에서 적의 판단”할 사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발주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소송으로 번지기도 한다.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흑도 백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발생한다는 특성 때문이다. 회색지대는 ‘재량’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달에서 ‘재량’은 불투명·불공정·부패와 동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특정 업계의 이익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 발주자는 민원과 감사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발주자 스스로도 재량에 대한 부담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은 제3자에게 맡기고 개입하지 않는다. 조달시장은 각 업계의 목소리와 주장으로 포화상태이다.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조달시장에서 분쟁은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띠며 증가하고 있다. 분쟁의 회색지대에서 명확한 방침을 내리고 결정해야 할 제1차 주체는 발주자이다. 사업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집행하는 최일선 창구이기 때문이다. 조달 시장에서 서로 충돌하는 정책적 가치를 조정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도 발주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발주자의 제대로 된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건설업계에서 오랜 기간 있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주자의 적극적 역할’은 요원하다. 발주자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문화와 환경, 관행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발주자의 역할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사업의 특성에 맞게 자기 책임 하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발주자가 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조달시장 참여자들은 발주자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때이다.
매년 공공 조달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 내외를 차지한다. 2014년 우리나라의 공공 조달 시장 규모는 125조원으로 국내 총생산액 대비 8.5%에 이른다. 이렇게 거대한 조달시장이 효율적인 생태계로 탈바꿈하기 위해 발주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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