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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엔지니어링산업 선진화, '국제표준'에서 길 찾아라②-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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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304회 작성일 15-03-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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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발주처 추가업무 요구 '빈번'…외국은 계약범위 명확

공공수주순위 300위 업체 “사업 10건 중 4건 별로 추가업무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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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엔지니어링 서비스는 ‘외화내빈’의 상황이다. 산업 전체 매출은 66.8% 성장한 데 반해 사업에 대한 이익률은 오히려 2.31% 감소했다. 양적으로는 성장하고 있는데 질적으로는 퇴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체 엔지니어링 산업에서 매출액 대비 사업이익률 부문에서 드라마틱한 감소 그래프를 그리는 것은 건설 부문이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와 한국조달연구원이 3월 발표한 ‘엔지니어링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7~2012년 엔지니어링 산업 전체 사업이익률이 2.31% 감소를 기록할 때 건설 부문은 최고 5%대의 이익률 감소를 보였다.

 ‘도시계획 및 조경설계 서비스업’은 -5.91%, ‘건축설계 및 관련 서비스업’은 -5.85%, ‘건설 엔지니어링 서비스업’은 -3.47%를 기록했다.

 이 같은 산업 침체의 원인에 대해 업계는 ‘발주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와 한국조달연구원이 작년 8월부터 공공사업 수주 순위 300위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이 가장 중요한 개선사항으로 꼽은 것은 발주처의 ‘추가업무 요구(중요도 5.7, 7점 만점)’였다. 발주자가 과업지시서상에 포함되지 않은 업무를 요구하는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수익성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발주자의 추가업무 요구가 발생하는 빈도율이 41.3%에 달한다고 답했다. 사업 10건을 수주하면 이 중 4건 이상의 발주기관이 추가업무를 요구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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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 ‘과업중지 후 업무요구(중요도 5.6)’와 ‘설계 등 업무에서의 재작업 지시(중요도 5.6)’, ‘과업대상 규모 축소에 따른 설계변경 요구(중요도 5.4)’, ‘공사비 요율방식의 불리한 계약금액 조정(중요도 5.4)’ 등을 개선사항으로 꼽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들은 “수행하는 사업의 3건 중 1건꼴로 발주자 측 귀책에 의해 과업기간이 늘어났음에도 일시적으로 과업을 중지한 후 계속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설계 등에서 작업 공정이 이미 진행됐고, 발주자 및 심의위원 등과 충분한 협의를 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민원이 발생하거나 사업환경 변화 등의 이유로 과업범위를 변경한 후 기존 작업을 무시하고 재작업을 지시하는 경우 역시 30%가 넘는다”고 답했다.

 업계 응답자들은 LH 등 주요 공공 발주기관의 경우만 해도 사업수행기간이 끝나고 성과품이 거의 모두 납품된 단계에서 교묘하게 용역을 중지한 이후, 공사가 완전히 준공될 때까지 업체에 지속적인 과업지시를 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엔지니어링은 시공과 달리 사업대가를 투입인원과 과업기간을 곱한 것으로 산정한다는 점이다. 과업을 중지한 상태의 추가 업무 지시는 불법이기도 하지만, 수행하는 사업 3건 중 1건꼴로 이런 과업중지 및 추가업무지시 요구가 발생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지출비용이 누적된다.

 업계 대형사 대표는 “최근 5년간 해외사업을 수행하면서 느낀 점은 외국 발주기관은 계약 과정에서 과업범위를 명확히 지시하고, 추가업무지시를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라며 “발주기관이 업체를 ‘종 부리듯’하다 보니, 업체들이 ‘종처럼 일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업계 수준이 발주기관의 수준 이하로 정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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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스타 엔지니어’가 없는가...제도 돌아봐야”

 -국내 건설기술용역 관련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우리는 보통‘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야기할 때 국제표준과 우리나라의 것이 얼마나 닮았느냐를 따진다. 양쪽의 콘텐츠를 비교하며 ‘외국의 평가기준에는 어떤 항목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접근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합성보다는 제도의 기본 구조와 해외의 제도 사이의 ‘호환성’을 물어야 한다. 얼마나 닮았느냐가 아니라 ‘글로벌 수준의 기업 및 기술자 탄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또는 제도의 콘텐츠가 글로벌 호환성을 갖췄는가’라는 관점에서 제도를 조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항목에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지금은 ‘왜 우리에게는 스타 엔지니어와 스타 기업이 없는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다.

 -국내 발주제도가 건설기술용역업을 내수용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선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국내 발주제도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를 전부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현재 우리 발주제도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업계의 책임도 절대 작지 않다. 지금의 제도는 정부와 업계의 합작품(合作品)이다. 정부와 산업계 모두 기득권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제도를 손보려 한다. 지금 ‘먹고 있는 것’이 줄어드는 제도는 무조건 반대하고 ‘더 얻을 수 있는 제도’만 바란다. 발주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정부와 산업계 모두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가, 나는 이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정부와 산업계가 ‘합작’해서 만든, 이 발주제도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가.

 지금 이 제도는 완전히 내수용이다. 이 점에 대해 이미 많은 전문가와 자료를 통해 수없이 반복적으로 발굴하고 진단했다. 그런데도 수십년 동안 쳇바퀴를 돌고 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이미 다 알려져 있지만 문제의식의 공유와 소통, 실행 의지가 미흡하다. 산업계 자체도 개혁을 위한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지 못했다.

 -서로 입장이 다른 기업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물론이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거다. 나는 현재의 발주제도는 입시제도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민감한 입시제도를 바꿀 때 정부가 고3 학부모에게 방향성을 물어보면 되겠나? 모름지기 정부는 리더십을 발휘해 어떤 철학을 달성하겠다는 이야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는 ‘이야기’가 부재하다.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제도를 개혁할 때는 정부가 장편 대하소설 수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 정부의 비전은 단편 만화 수준이다.

 -‘선진화된 발주제도’란 게 과연 무엇일까.

 ‘선진화’는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발주자의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이 선진화다. 발주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선진화된 제도다. 후진국일수록 제도가 엄격하다. 선진국은 스마트한 발주자가 최적의 사업자를 선정하고자 충분히 고민하도록 만든다. 반면 우리나라는 발주자가 딱 정해진 제도 안에서 점수만 매기면 된다. 사업자를 ‘잘 선정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없이 선정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력 승부가 불가능한 거다.

 -건설기술용역업이 ‘국제표준’으로 체질개선을 하려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변화는 반드시 저항과 두려움을 동반하는데, 저항과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드는 동력이 리더십이고 비전이며 스타 기업과 스타 기술자의 존재다. 우리 건설기술용역 산업이 지닌 한계점과 문제점은 제도 및 발주자의 한계점과 문제점의 ‘반사 이미지(mirror image)’다. 산업의 수준은 정부의 제도와 발주자의 수준을 절대 넘어서지 못한다. 이제는 각론적으로 임시 처방에 의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건설기술용역 산업의 바람직한 생태계가 무엇인지 디자인하고 이를 구현해야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처방이 아니라, 아예 끊어버리는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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