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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나그네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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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57회 작성일 15-03-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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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식 산업1부장

‘민물이냐, 짠물이냐?’ 기자들 사이에 설왕설래한 말이다. 낚시를 강으로 갈 것인가, 바다로 갈 것이냐는 고민이 아니다.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면서 오간 작은 논쟁이었다. 학자 출신인 그의 학문적 성향을 미리 파악해 보면 정책의 향배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자적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민물과 짠물은 미국 경제학 분야의 두 가지 조류를 의미한다. 민물은 미국 중북부의 오대호 주변에 위치한 대학의 학풍을 말한다. 순수 자본주의 개념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반면 태평양이나 대서양 등 바다가 가까운 미국 해안이나 유럽에 있는 대학의 학풍은 짠물로 분류된다. 시장의 횡포를 막고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혁 등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유 후보자는 짠물로 분류되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다.

논문도 살펴봤다. 이념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서다. 눈길을 끈 것은 지난 2002년 발표한 ‘재정건전성 제약 하의 SOC 투자’였다. 교통 관련 SOC 투자수익률(성장 기여도)은 대체로 40%가 넘는 높은 수준인데 스톡수준(투자수준)이 낮은 것을 입증하는 결과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부족한 재원 확보를 위해 민간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것을 논문은 제안한다. 공교롭게도 청문회가 열린 지난 10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SOC 민간투자 견인 외에는 경기회복 수단이 없다”며 제도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조세전문가인 유 후보자를 그 자리에 앉힌 이유가 있었다는 해석이 나올 법도 한 상황이다. 건설업계가 귀를 쫑긋 세울 만한 대목이었다.

기대는 이내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시한부 장관’, ‘과객(過客) 장관의 굴레를 떨치지 못한 탓이다. 현역 의원인 그가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면 10개월 남짓밖에 장관직을 수행할 수 없다.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한부 장관이 될 공산이 크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10개월을 다 채우면 평균(장관 임기)에 가깝다”고 거들기도 했다. 편 드는 것도 좋지만 헛웃음이 난다. 장관의 임기가 최소 2년은 돼야 한다는 고 남덕우 부총리의 지론은 접어두더라도 중간에 잘리는 장관과 퇴임 날짜가 정해진 장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 후보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 기간이면 충분한 성과를 낼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 녹록지만은 않은 자리임에 틀림없다. 전문성이나 업무 수행능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함께 일해야 할 관료들이다. 노회한 관료조직은 장관을 과객으로 생각한다. 지나가는 나그네 말이다. 그런 장관에게 진심을 다하는 관료는 많지 않다. ‘어차피 지나갈 사람인데 조금만 버티자’라며 엎드린 관료에게서 참신한 정책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많은 나그네의 행태를 보아온 그들에게 애국심과 충성심에 호소하기는 자체가 난센스인 셈이다.

청문회를 통과한 유 후보자는 임명 절차를 거쳐 국토교통정책의 수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우려도 있고 기대도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장관 한 명이 산업이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그래도 마음 구석에 ‘이번에는, 이것만은…’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전임 장관 시설 부처는 물론 산업의 존재감 자체가 뒷전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 비전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나그네 장관을 지켜봐야 하는 건설인들의 마음이 울가망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대를 접자. 밖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려 자신을 스스로 추스르는 게 현실적이다. 초를 치자는 게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을 알기에 눈총을 무릅쓰고 하는 말이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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