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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경제성’만 있고 ‘삶의 질’은 없는 민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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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04회 작성일 15-04-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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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밀착돼서 불쾌한 정도가
아닙니다. 폐가 눌리고 숨쉬기 어렵고, 팔이 끼여 안 빠지고. 9호선으로 출퇴근하시는 분들은 서로 힘든 거 아니까 밀리고 밀쳐도 화도 내지 않습니다. 높은 분들 그 시간에 한 번만 타봐도 얼마나 심각한지 아실 겁니다. 자기 아이가 타고 있어도 이렇게 ‘나중에, 나중에’ 할까요?” <가양동 거주 직장인>

“쾌적하잖아요. 한국에서는 버스나 택시 탈 필요 없어요. 자가용도 필요 없고요. 지하철이 이렇게 쾌적하고 좋은 나라가 없어요. 깨끗하고, 무엇보다 무인시스템이다 보니 맨 앞칸에서 터널을 볼 수 있어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에요. 근데 신분당선 적자라고 폐쇄된다는 소문이 돈다면서요? 정말 걱정이에요.” <홍콩계 중국인 위지림>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응이다. 극과 극이다. 좀 과장하자면 천당과 지옥이다. 실제로 9호선은 지하철이 아닌 ‘지옥철’로 불린다. 지난달 5개 역이 연장 개통되면서 출퇴근 시간은 전쟁터가 됐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여의도 등 일부 역에 소방인력과 구급차까지 대기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닌 듯하다. 사는 곳과, 출퇴근 노선이 시민들의 아침 기분을 결정하는 셈이다.

평가는 정반대지만 공통점이 있다. 민간투자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은 수요예측의 오류 때문이다. 신분당선은 주변 연계 노선의 차질 등으로 이용객이 예측을 크게 밑돌았다. 9호선은 반대의 경우다. 일부 민자사업이 수요를 부풀려 비난을 받자 애초부터 낮춰 잡았다. 적자를 피해보겠다는 속셈이었다. 여기에 시민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업재구조화에만 매달리다 차량 증차 시기를 놓친 늑장행정이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민자사업이 도입된 지 올해로 21년째를 맞는다. 도입 초기에는 도로, 항만 등 전통적 개념의 사회기반시설(SOC)을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졌다. 2005년부터 임대형인 BTL 방식이 도입되면서 학교, 군시설, 환경인프라 등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여기에 정보통신, 새로운 운영시스템, 문화콘텐츠 등이 가미됐다. 공공시설들이 민간의 창의가 결합한 서비스를 입고 삶의 질 개선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자사업 하면 붙어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혈세 먹는 하마’라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민자시설의 편익은 간 데가 없고 부정한 시설처럼 인식되고 있는 처지다. 잘못된 과정이 사업 전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재정부족으로 9호선이 건설되지 않았다면, 중국인 위지름의 우려처럼 적자 때문에 신분당선이 폐쇄됐을 경우를 가정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정부가 민자사업 군불 지피기에 나섰다. 재정부담을 덜면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카드로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를 들고 나왔다. 정부가 공동책임을 지고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수익성을 높여 시중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재정이 궁한 상태에서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본질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민자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 편익증진이다. 경제성도 중요하고 경제살리기도 좋지만,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업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기본 개념과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논란을 야기하고 문제가 생겨도 해결이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민간투자사업법에는 ‘민간의 투자를 촉진하여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사회기반시설의 확충·운영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규정돼 있다. 경제만 있고 삶은 없다. 그동안 얽히고 설킨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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