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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발주처-건설사 갑을관계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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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34회 작성일 15-07-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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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용 정경부장

공공 발주처와 시공사간의 갑을관계가 동등해질 수 없음은 익히 알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상생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해도 돈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입장이 같아질 수가 없어서다. 그렇더라도 과거에 비해 나아졌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공 발주처의 불공정 관행 근절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공공 발주처도 과거보다는 조금 유연해졌을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최근 한국도로공사에 휴지기간 간접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던 시공사들이 갑자기 소를 취하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기대는 깨졌다. 평생 아랫사람의 수발을 받던 양반이 은퇴 후에도 어깨에 힘을 빼기 쉽지 않은 것처럼 공공 발주처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도 내려놓기가 쉬운 게 아닌 모양이다.

 기업은 이윤을 좇는다. 돈이 된다면 불구덩이도 마다하지 않는 게 기업의 생리다. 건설사도 기업이다. 이런 기업들이 수십억원의 이권이 달린 소송을 취하했다. 더욱이 법률가들은 이 소송에서 기업들이 이길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던 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도로공사의 휴지기간 중 간접비 청구금지조건 설정은 부당한 거래라고 한 판정도 기업들의 승소 가능성을 높였다. 그런데 기업들이 갑자기 소를 취하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소송을 통해 얻는 이득보다 중도 포기했을 때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소를 취하한 기업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소를 취하한 마당에 괜한 구설에 휘말리기 싫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선 도로공사의 현장감독 강화에 건설사들이 배겨내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벌점이라도 맞으면 공공공사 입찰에서 감당해야 할 손실이 커 소를 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하반기에 몰려 있는 도로공사의 기술형입찰도 기업들이 더이상 소송을 끌 수 없게 한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발주처에 밉보이면 기술형입찰 공사의 수주가 어려운 현실에서 소송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도로공사에 밉보여서 입게 되는 손실의 크기가 소송을 통해 얻는 이득보다 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당시 도로공사를 출입하면서 이번 소 취하건과 비슷한 일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한 업체가 턴키공사의 설계심의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한 일이다. 이 업체는 승소를 자신하며 호기있게 법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송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업체가 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사정을 취재해 보니 도로공사가 관할하는 이 업체의 현장소장들이 본사에 소 취하를 읍소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도로공사가 이 업체의 현장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품질ㆍ안전점검에 나서면서 현장소장들이 배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소송은 그렇게 매듭이 됐다. 그리고 여기에서 취재가 끝났으면 발주처의 압박에 백기를 든 여타의 일들처럼 이 일은 기억에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 것은 한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박혀있는 장면 때문이다. 도로공사와 업체 간에는 송사로 인한 앙금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앙금을 푸는 것은 당연히 업체의 몫일 것이다. 소 취하로 일이 매듭된 지 얼마되지 않아 머리가 희끗한 신사 한 분이 도로공사 본사를 찾았다. 알아보니 소를 취하한 업체의 부사장이었다. 이 신사는 도로공사 담당부장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도로공사 담당부장은 등을 돌려 외면했다. 신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담당부장의 등은 돌려지지 않았다.“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신사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담당부장은 여전히 돌아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턱은 한껏 천장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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