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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노랫소리 끊긴 잔칫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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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12회 작성일 15-07-0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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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을 둔 김건설 첨지가 생일을 맞았다. 지난 1965년 둘째 아들이 물 건너 동네에 나간 지 50년 만에 벌어들인 외화가 무려 7000억달러를 넘어서는 뜻깊은 날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잔칫집에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흥겨운 분위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차라리 썰렁하다. 1981년부터 생일을 챙겨 왔지만 언제부터인지 노랫소리가 잦아들더니 수년째 잔칫집 분위기가 도통 나지 않는다. 세 아들의 사업이 여의치 않은 데다 우환마저 겹쳐서다.

 첫째 아들 공공(公共)이는 맏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네에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집과 공장을 지었다. 그 덕분에 이제조 등 친구들이 일할 터전을 잡았고 요즘은 외국 얘들과 경쟁에도 뒤지지 않게 됐다고 한다. 잘 나간다는 최정보와 정통신이라는 친구도 역시 공공이가 터를 잘 닦아 놓은 덕분에 폼잡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집안은 물론 동네 일꾼 역할도 제대로 해낸 셈이다. 벌이도 쏠쏠했다. 이웃에 나눠줄 여유도 있었다. 동네 다방과 자장면집, 선술집에도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십수년 전부터 사업주가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기 시작했다. 공사를 하면 이익은커녕 집안 돈이나 남에게 꾸어 손해를 메워야 했다.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다가 이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사업주 박정부가 품삯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하세월이다. 여기에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친구들과 짬짜미한 것에 대해 몰아치기 식으로 조사하고 먹은 것의 몇 배를 토해내고 사업마저 접으라고 한다. ‘왜 이제, 왜 나만…’ 할 말은 많지만, 잘못은 잘못이기에 모두 삼키고 있다. 속은 이미 숯검정이다.

 둘째 아들 해외는 소문난 효자였다. 낯설고 물 선 먼 동네까지 나가 외화를 벌어들여 집안의 기둥을 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외화로 마을을 남북으로 잇는 신작로를 만들고 공장도 지어 동네가 일어설 기반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름값이 올라 동네가 망할 처지에 놓일 때마다 둘째가 송금한 돈으로 위기를 넘겼다. 둘째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서린 돈이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한개천의 기적’이라는 말도 둘째 아니었으면 애당초 생길 수 없었다. 과묵한 둘째는 힘들다는 소리도, 생색도 내본 적이 없다. 그런 둘째가 많이 아프다. 형의 빚을 메우려고 무리하게 일을 따다 보니 손해를 보는 일이 생겼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은 ‘짬짜미 사고 친 집안의 둘째인데 믿을 수 있을까?’라며 사시를 뜨고 보는 외국 사업주들의 시선이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다.  

 김첨지가 그나마 사는 이유는 셋째 아들 주택이 때문이다. 새동네 개발 붐에 투기 바람 등으로 돈을 좀 만졌던 셋째는 듣도 보도 못한 해외 금융회사가 무너지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7∼8년간 노심초사하다 최근 집사기 바람이 불며 재미를 좀 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언제 고꾸라질지 모른다. 해가 지기 직전에 반짝 하는 현상일 것이라는 전망도 김첨지를 불안하게 한다. 셋째마저 무너지면 더는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첨지는 별 다른 바람이 없다. ‘예전에 우리 집안이 이랬는데, 우리 아들들이 동네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일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세상이 달라지고 인심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아서다. 마음 한편에 소박한 바람은 있다. 세 아들을 있는 그대로만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과거를 딛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소망마저 숨길 수는 없다. 힘든 현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년 생일 노랫소리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가슴이 아릴 뿐이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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