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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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00회 작성일 15-09-07 09:13본문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의미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오자서 열전’에서 유래했다. 중국 춘추시대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와 형이 평왕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그는 이웃 오 나라로 망명해 복수를 다짐한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 오자서는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와 함께 오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 마침내 외교통상부 장관에 해당하는 행인의 자리에 오르자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한다.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 나라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정작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후계자 소왕의 행방도 묘연했다. 보복을 예상했는지, 평왕은 자신의 무덤을 연못 속에 만들고 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렸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위치를 알려주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채찍 300대를 치며(굴묘편시:掘墓鞭屍) 분을 풀었다. 오자서의 친구인 신포서가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복수 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했다. 이에 오자서는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고 했다.
날이 저물고 갈 길이 멀게 느끼는 곳이 또 있다. 건설사들이다. 올해도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공공건설 시장은 예년과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며 수주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건설수주는 전년보다 50% 늘었다. 연구기관은 두 자릿수까지 증가할 것으로 수정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건설사들의 체력을 갉아 먹어온 왜곡된 공사비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악명 높은 실적공사비와 최저가낙찰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제값 받기’가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와는 달리 행보는 지지부진이다. 실적공사비를 대신할 표준시장단가 개선 방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최저가낙찰제를 대신할 종합심사낙찰제도 갈지자 행보다. 수주가 늘었다는 발표는 나오지만 남의 일이다. 정작 내 곳간을 돌아보면 텅 비어 있다. 더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뜸하던 저가 경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 방식의 삽교방조제 갑문확장 공사가 추정가격 대비 63%대에서 실시설계 적격자가 선정됐다. 이에 앞서 실시된 여수 추가 지상탱크 건설공사와 신서천화력 토건공사 등 플랜트 공사 입찰에도 60%대 투찰이 나왔다. 수년 전 건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덤핑의 망령이 스멀스멀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과거 입찰에서 60%와 지금의 60%는 숫자는 같지만 천양지차다. 깎은 데 또 깎은 공사비에서 30∼40%라는 뭉텅이를 스스로 잘라내는 것은 과거 다소 느슨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저가 수주가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고 유지관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손해라는 점잖은 말은 꺼낼 필요도 없다. 기업을 한 방에 훅 가게 하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플랜트 공사에서 저가 경쟁으로 떠안은 천문학적인 적자가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현실을 지켜봤다. 무엇보다 문제는 공사비 현실화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깨지는 건설사들을 보며 마지 못해 제도 개선에 나선 정부에 ‘그것 봐라. 60%에도 한다는데…’라는 인식을 다시 심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누가 좋아서 저가 투찰을 하겠는가. 1등만 의미 있는 입찰, 저가를 부추기는 발주처, 저가라도 따야 연명할 수 있는 절박감, 부서별 실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난 산물일 뿐이다. 그렇다고 덤핑 투찰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을 죽이는 반칙이기 때문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
박봉식기자 parkbs@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 나라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정작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후계자 소왕의 행방도 묘연했다. 보복을 예상했는지, 평왕은 자신의 무덤을 연못 속에 만들고 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렸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위치를 알려주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채찍 300대를 치며(굴묘편시:掘墓鞭屍) 분을 풀었다. 오자서의 친구인 신포서가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복수 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했다. 이에 오자서는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고 했다.
날이 저물고 갈 길이 멀게 느끼는 곳이 또 있다. 건설사들이다. 올해도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공공건설 시장은 예년과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며 수주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건설수주는 전년보다 50% 늘었다. 연구기관은 두 자릿수까지 증가할 것으로 수정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건설사들의 체력을 갉아 먹어온 왜곡된 공사비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악명 높은 실적공사비와 최저가낙찰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제값 받기’가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와는 달리 행보는 지지부진이다. 실적공사비를 대신할 표준시장단가 개선 방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최저가낙찰제를 대신할 종합심사낙찰제도 갈지자 행보다. 수주가 늘었다는 발표는 나오지만 남의 일이다. 정작 내 곳간을 돌아보면 텅 비어 있다. 더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뜸하던 저가 경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 방식의 삽교방조제 갑문확장 공사가 추정가격 대비 63%대에서 실시설계 적격자가 선정됐다. 이에 앞서 실시된 여수 추가 지상탱크 건설공사와 신서천화력 토건공사 등 플랜트 공사 입찰에도 60%대 투찰이 나왔다. 수년 전 건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덤핑의 망령이 스멀스멀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과거 입찰에서 60%와 지금의 60%는 숫자는 같지만 천양지차다. 깎은 데 또 깎은 공사비에서 30∼40%라는 뭉텅이를 스스로 잘라내는 것은 과거 다소 느슨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저가 수주가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고 유지관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손해라는 점잖은 말은 꺼낼 필요도 없다. 기업을 한 방에 훅 가게 하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플랜트 공사에서 저가 경쟁으로 떠안은 천문학적인 적자가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현실을 지켜봤다. 무엇보다 문제는 공사비 현실화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깨지는 건설사들을 보며 마지 못해 제도 개선에 나선 정부에 ‘그것 봐라. 60%에도 한다는데…’라는 인식을 다시 심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누가 좋아서 저가 투찰을 하겠는가. 1등만 의미 있는 입찰, 저가를 부추기는 발주처, 저가라도 따야 연명할 수 있는 절박감, 부서별 실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난 산물일 뿐이다. 그렇다고 덤핑 투찰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을 죽이는 반칙이기 때문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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