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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죽을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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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80회 작성일 15-08-1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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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식 산업1부장

고명한 스님이 수백 명이 모인 공개 석상에서 가정주부에게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라고 다그친다. 생명의 존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스님이 하는 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호하다. 그 스님은 법륜이다. 문답형식으로 고민을 풀어주는 즉문즉설 법회장에서 나타난 장면이다.

다소 황당한 강요(?)가 나온 배경은 이렇다. 세 살, 여섯 살 아이를 둔 주부는 법륜 스님의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사치하고 과시하고 남을 무시하는 삶의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고 했다. 주부는 앞으로도 평생 바른 삶을 살고 싶다며 방안을 물었다. 스님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천성과 카르마(karma, 업(業))는 바꾸기가 그만큼 힘이 든다는 것이다. 죽을 각오를 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게 법륜 스님의 답이다. 이유인즉슨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 닥치면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엄마에게는 더없이 잔인한 자식에 대한 협박마저도 견뎌내야 새로운 삶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수많은 결심을 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목표를 세운다. 금연이나 금주 등 생활태도를 바꾸기 위한 다짐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기도 하고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한다. 길면 한두 달, 대부분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변화는 극단적으로 목숨까지 걸어야 가능하다는 말을 했으리라. 개인이 그럴진대 기업이나 산업의 변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건설산업이 변화를 다짐한다. 건설사와 관련 단체 등은 오늘 담합 근절과 상생 다짐을 위한 자정결의 대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의 불공정 관행을 반성하고 투명•윤리경영의 각오를 다질 예정이다. 일자리 창출과 사회공헌 확대를 통해 신뢰받는 산업으로 거듭날 것도 천명할 계획이다.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공공공사 입찰참가 제한, 영업•자격정지 등을 해제한 특별사면에 따라 마련된 자리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전향적 결정을 내린 데 대한 화답의 의미도 있다. 무엇보다 이 자리가 의미가 무거운 이유는 국민과 약속을 하는 자리라는 점이다. 건설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곱지 않다. 용인할 수 있는 한계점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담합 건설사에 대한 행정처분 사면은 2000년 이후 이번이 4번째다. 마을 주민들이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믿어준 것도 두 번뿐이었다.

수주산업인 건설에서 담합은 필연이라느니, 필요악이라느니 하는 말에도 일부 공감한다. 산업의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잘못된 관행, 제도 등도 사태를 키웠다. 후진적인 제도가 담합을 부추기고, 무리하고 안일한 사업추진 방식이 담합을 방조하고, 환경변화를 감안하지 못한 잣대가 건설사들을 담합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데 일조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눈만 흘기고 있을 수는 없다. 밖으로 향하던 손가락을 접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 ‘살기 위해서, 제도 때문에…’ 등의 단어는 기억 속에서 지워야 한다.

지금 건설은 기로에 서 있다. 과거 경제성장을 이끈 효자산업, 건설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은 환경이 팍팍해져서다. 앞으로 상황도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사즉필생<死卽必生>의 정신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설사 수주를 하지 못해 기업이 위기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반칙하지 않는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한다. 그래야 새로운 문화가 살고, 산업이 살고, 미래도 산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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