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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에필로그> '진짜' 현장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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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41회 작성일 15-10-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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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답이 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관료들이 꽤나 즐겨쓰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와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까지 경쟁적으로 전국의 현장을 누볐다.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도 건설, 주택, 교통 분야 현장을 두루 찾는다.

 유 장관은 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토교통 규제개혁 현장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업인들의 현장 애로사항 10개에 대한 해법을 내놨다. 이날 공개된 현장 애로사항들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그 동안 왜 해결이 안됐는지 의구심이 든다.

 녹지ㆍ관리지역에선 공장 증축을 위해 바로 옆 땅을 사도 기존부지와 편입부지의 건폐율이 각각 따로 적용돼 무용지물이다. 주거지역에서 두부 공장은 바닥면적 1000㎡ 미만을 적용받지만 빵과 제과, 떡 공장은 500㎡ 미만으로 강한 제약을 받는다. 도로와 공원의 폭이 합쳐서 똑같이 20m 이상이더라도 공원 위치에 따라 건축법상 정북방향 일조권의 적용 여부가 달라진다. 정부의 역점사업인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는 매입형 사업을 위해 준공전 통매입(분양)을 이미 허용했지만 일부 지자체에선 과거 조례를 여전히 고집한다.

 현장의 최전선에 선 기업들은 이처럼 불합리한 규제와 관행의 족쇄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늦게나마 현장의 목소리에 답해 적극적으로 풀겠다니 다행이다. 유 장관도 “법령 개정만 하면 할 일 다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규제개혁은 의미가 없다”라며 강도높은 표현을 써가며 국토부 직원들을 다그쳤다.

 지금보면 누가봐도 ‘엉터리 규제’인데 그 동안 ‘합리적인 규제’로 존속했던 이유는 뭘까. 공무원들이 현장과 너무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인을 만나면 무슨 큰 일 나는 줄 아는 공무원 사회의 최근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한 고위 공무원의 비위사건을 계기로 공무원 사회의 ‘철통 보안’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소통에 목이 마른 공무원들도 많다. 하지만 “괜한 오해를 사느니 (기업인들) 안만나는 게 속편하다”고 말하는 A과장의 하소연이 공무원 사회의 정서다.

 현장과 괴리된 공무원 사회는 ‘헛다리 정책’을 남발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기업과 현장보다는 ○○협회 등 유관기관의 대화채널에만 의존하는 경향도 강해진다. 어쩌다 현장의 다양한 여론을 들으면 정책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져 제자리걸음하기 일쑤다.

 장ㆍ차관은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며 언론의 조명을 받지만 정작 과장, 사무관들은 여의도 국회에 묶여 있거나 서울∼세종 간 KTX에서 시간을 허비한다. 장차관의 ‘현장 행차’도 중요성보다는 동선과 시간관리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강원도 현장처럼 먼 곳은 일단 제외된다. 기자가 지난달 다녀온 인제터널이 대표적이다. 세종이나 서울에서 인제터널을 다녀오려면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 한다. 인제터널은 길이 10.96㎞로 도로 터널로는 국내 최장이자 세계에서 11번째로 길다. 첨단 공법뿐만 아니라 설계단계부터 환경단체와 주민들을 참여시켜 ‘사패산 터널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지금까지 7445명(9월16일 기준)이 다녀갔지만 이 명단에 국토부 장차관은 없었다. 진짜 현장을 가야 답이 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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