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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라운지] ‘감정 단계’에서 변호사와 엔지니어의 유기적인 대응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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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5-12-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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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소송에서 재판의 결론은 판결문이 아니라 감정 단계에서 이미 윤곽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실무에서 흔히 “감정이 사실상 1심”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정은 단순한 기술 검증 절차가 아니라, 어떤 하자가 인정될 것인지, 보수 범위와 보수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절차다.

그럼에도 실제 소송 현장을 보면 감정 단계가 충분히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은 법원이 주도해 진행되므로 공정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당사자들이 별다른 대응 없이 절차를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인 지정, 감정 범위 설정, 조사 방식 선택 등은 법원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사항이 아니라, 변호사와 엔지니어의 유기적인 대응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감정인 지정 단계는 이후 전 과정을 좌우하는 출발점이다. 감정인의 전문 분야나 과거 감정 경향에 따라 같은 하자라도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의견서 제출이나 이의 제기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이 단계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이후 불리한 감정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착수회의와 현장조사 역시 중요하다. 착수회의는 단순한 일정 조율이 아니라 감정의 범위와 조사 방법이 사실상 확정되는 자리다. 어떤 항목을 조사할지, 파취조사를 할 것인지, 보수 방법을 어떤 전제로 볼 것인지가 이때 정해진다. 그럼에도 착수회의에 형식적으로 임하거나, 실질적인 의견 개진 없이 절차를 넘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파취조사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조사 위치와 범위에 따라 하자 인정 여부뿐만 아니라 보수비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취조사 과정에서 하자 확인에 필요하지 않은 범위까지 조사하는 등 불합리한 조사 방식이 있음에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조사가 진행되면, 그 결과는 그대로 감정서에 반영된다. 이후 조사 방식이 과도했다거나 부적절했다고 주장하더라도,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많은 당사자들이 감정서가 제출되면 이미 결론이 확정된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감정서는 법원의 판단을 보조하는 자료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 과정에서의 전제 사실 오류, 조사 방식의 문제, 현실과 동떨어진 보수 방법 선정 등은 감정보완 신청을 통해 충분히 다툴 수 있다.

실무에서는 감정보완이 한차례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이 과정에서 감정 금액이 상당 폭 조정되거나, 하자 항목 자체가 제외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감정서 제출 이후의 대응 역시 감정 단계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하자소송에서 감정은 기술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어떤 하자를 감정에 포함시킬 것인지, 어떤 보수 방식을 전제로 판단할 것인지는 법률적 판단과 소송 전략이 함께 작동해야 할 문제다. 초기 감정 단계에서 변호사와 엔지니어의 유기적인 대응을 놓치면, 이후 수년간의 소송을 거치더라도 그 불리함을 만회하기는 어렵다.

하자소송이 갈수록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는 지금, 감정 단계에 대한 준비와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결국 소송의 승패는 법정이 아니라, 감정 단계에서 이미 갈라지고 있다.

정홍식 변호사(법무법인 화인)〈ⓒ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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