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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해석

[공공계약 판례여행]지체상금에 관한 영국 판례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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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230회 작성일 17-12-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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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상금은 국내건설과 해외건설을 막론하고 시공사의 가장 중요한 법적 리스크 중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바로 얼마 전 기획재정부가 공공조달에서 지체상금률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발표한 것도 기업들의 지체상금에 대한 지나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체상금 약정은 계약상대자가 약정한 완공기일 내에 공사를 완성하지 못하는 등 도급계약에 따른 의무의 이행을 지체할 경우에 발주기관에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하여 둔 약정으로 정의되는데, 이는 민법 제389조 제2항이 규정하는 “손해배상의 예정”에 해당한다. 법원은 계약 당사자의 지위, 계약의 목적과 내용, 지체상금을 예정한 동기, 실제의 손해와 그 지체상금액의 대비, 그 당시의 거래관행 및 경제상태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약정에 따라 산정한 지체상금액이 일반 사회인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1386 판결).

여기서 과연 어떤 경우에 지체상금액이 부당하게 과다한 것인지가 실무상 가장 문제가 된다. 판례가 나름대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실제 사례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영국에서는 백 년 만에 지체상금(Liquidated Damages)에 관한 판례를 변경하였는데, 해외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영국 법원은 1915년 Dunlop v Selfridge 판례에서 당사자가 합의한 지체상금의 액수가 “손실에 대한 진정한 예상액(genuine pre-estimate of loss)”을 초과하는 경우 지체상금 약정의 효력을 부정해 왔다. 그러나 2015년 Cavendish v Makdessi 사건에서 “채권자의 합법적 이익을 현저하게 초과(out of all proportion to any legitimate interest of the innocent party)”하는 경우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다.  Cavendish v Makdessi 판결은 건설사건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건설현장에도 적용되어 실무상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존에는 예측 가능한 손해 이상의 지체상금은 곧바로 무효로 판단되었으나, 변경된 판례에 의하면 예측가능한 손해를 초과하더라도 상업적 이유가 인정된다면 그 유효성이 인정된다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는 발주자에게 유리한 판결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사적 자치를 보다 강조하여 계약의 효력을 최대한 인정하려는 영미법에서조차 당사자들이 예상한 손해를 초과하는 지체상금의 효력을 오랜 기간 부정해 왔다는 점은, 공공복리 원칙에 따라 법원의 지체상금액 조정을 애초부터 인정하는 국내 실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을 따르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의 법원은 시공자가 손해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면 손해배상액 예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변경된 영국 판례에 의하더라도 지체상금이 발주기관의 합법적 이익을 현저하게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공사 지연에도 불구하고 발주기관에게 실제 손해가 없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감면 대상이 될 것이다.

지체상금 제도는 발주자 입장에서 계약상대자에게 계약 이행을 강제할 수 있고 손해액에 대한 입증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시공자 입장에서는 법적 리스크에 대한 예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계약당사자들이 미리 약정한 지체상금의 내용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실제 사안에서 일방에게 불합리한 결과를 방치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체상금에 대한 법원의 보다 적극적인 조정을 통해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는 것이 지체상금율 인하 등 제도 개선 못지 않게 중요할 것이다.

 윤덕근 법무법인 율촌 부동산건설그룹 변호사

 영국 핀센 메이슨스(Pinsent Masons) 로펌 파견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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