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계약 판례여행]‘발주자 해석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 만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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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57회 작성일 18-03-15 10:22본문
입찰안내서의 유의 사항에 “본 입찰안내서의 내용상 모순∙누락 또는 불분명한 사항에 대한 질의는 시한 내에 발주자에게 문서로 제출한 것에 한하여 효력이 있으며, (중략) 답변 사항은 입찰안내서의 일부로서 계약문서의 효력을 가진다. 다만 내용상 모순, 누락 또는 불분명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질의가 없는 경우 발주자가 해석하는 바에 따른다”는 규정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공사 입찰의 경우 실시설계적격자가 입찰안내서의 내용에 따라 실시설계를 진행하게 되는데, 적격 판단을 받은 실시설계를 바탕으로 계약상대자가 시공을 하는 가운데, 그 실시설계에 대해 사후적으로 발주자가 이견을 제시하면, 뒤늦게 ‘입찰안내서의 내용상 모순∙누락 또는 불분명한 사항이 발견’되는 상황이 발생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 발주자로서는 위 입찰안내서상 유의 사항의 문구를 근거로 하여 자신이 해석하는 바에 따라야 하며, 실시설계의 변경에 따른 추가 공사대금의 지급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위 문구처럼 발주자는 ‘입찰안내서의 내용상 모순∙누락 또는 불분명한 사항’에 대한 해석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재판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당사자 사이의 의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해석의 권한은 법원에 있다. 계약사항에 대한 이의가 생겼을 때에는 일방의 해석에 따른다는 계약서 조항은 법원의 법률행위 해석권을 구속하는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74. 9. 24. 선고 74다1057 판결 등 참조). 계약당사자 간에 어떠한 계약 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지만,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 여하에 관계없이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당사자 사이의 계약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4다14115 판결 등).
그리고 이러한 법리는 공공계약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가 금융기관과 수납대행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이 계약의 해석에 이견이 있을 경우에는 계약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하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해석에 따른다”고 합의한 사안에서, 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해석론을 배척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6. 1. 21. 선고 2015나2029549 판결).
서두에 소개한 입찰안내서의 문구가 존재하는 사안에서, 입찰 과정의 질의응답 기간 중에 계약상대자가 질의를 하지 않았으므로 발주자의 해석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발주자가 위 문구에 근거하여 펼쳤으나, 법원은 앞서 소개한 법리를 바탕으로 발주자의 주장을 배척하였다(서부지방법원 2017. 7. 13. 선고 2016가합38450 판결).
해당 사안 자체가 설계변경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법리는 서두에 소개한 바와 같이, 실시설계에 대해 사후적으로 발주자가 이견을 제시하면, 뒤늦게 ‘입찰안내서의 내용상 모순∙누락 또는 불분명한 사항이 발견’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도 적용될 것으로 사료된다.
이경준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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