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라운지]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25-02-13 08:58본문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단어 그대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변경가능성을 배제하는 발주자와 수급인,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의 약속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공사도급표준계약서 일반조건 제20조(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항목을 삭제하고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은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기재하는데, 그 결과 물가가 상승하거나 떨어지는 경우에도 발주자와 수급인은 계약금액을 올리거나 내릴 수 없게 된다.
예전부터 물가가 인상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자재비 증액 리스크를 줄이기 위하여 발주자와 시공사 사이에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환율이 급변하거나, 외국의 전쟁 등을 이유로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하여 도저히 계약 당시 합의한 내역으로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처럼 건설원자재 상당 부분, 특히 철근, 철골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나라에서는 급격한 물가변동에도 불구하고 계약체결 당시의 금액으로 계약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수급인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소위 관급공사라고 하는 공공계약에서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제19조에 따라 계약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계약금액 조정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16조의2를 통하여 하도급대금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문제는 민간계약에서 발주자와 수급인 사이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인데, 대법원은 과거 국가계약법이 적용되는 공공계약에 있어서도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하는 특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이래(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4다233480 판결 등) 줄곧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을 인정하여 왔으며, 민간공사에 있어서도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이 유효하다는 판결이 현재까지도 선고되고 있다.
하지만 수급자의 입장에서는 하수급자로부터 물가변동을 원인으로 한 계약금액 조정신청이 있어 하도급법에 따라 계약금액을 조정하더라도, 발주자와 체결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으로 인하여 증액된 공사비용을 받지 못하게 되는, 샌드위치 신세에 놓일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해당 부분을 무효로 보는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을 적용하여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문제점을 제기하게 되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는 무효 사유로서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를 들고 있는데, 2024년도에 이를 근거로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을 다룬 판결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대법원 2024. 4. 4. 선고 2023다313913 판결).
해당 사건에서 발주자인 교회는 건설회사와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여 공사를 진행하려던 중 착공이 지연되어 공사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선급금 보증기간의 연장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거절당하자 도급계약의 해제를 통보하고, 선급금 반환 등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건설회사는 귀책사유 없이 예정기간보다 실착공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철근가격이 상승하여 계약금액 증액 및 공사대금 지급보증서를 받기까지는 보증기간이 연장된 계약이행보증서 및 선급금 보증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하였다.
1심에서는 발주자의 계약해제를 받아들여 건설회사와 건설공제조합의 선급금 반환의무를 인정하였는데, 항소심에서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물가상승 등으로 도급금액을 증액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는 부분 중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 제20조 제1항에 반하는 부분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즉 도급계약 특약사항을 들어 어떠한 경우에도 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증액, 변경을 부정할 수는 없다)”라고 명시적으로 밝혔고, 발주자가 수급인의 정당한 도급금액 증액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도급금액 증액이 확정되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보증기간이 연장된 계약이행보증서, 선급금보증서를 제출할 수 없었으므로, 발주자가 수급인의 귀책사유를 원인으로 공사도급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부산고등법원 2023. 11. 29. 선고 2023나50434 판결).
비록 위 판결은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되어 대법원에서 항소심의 견해를 명시적으로 지지한 것이라고까지 단정할 수 없으나,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에 저촉되어 무효라는 판단을 지지한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는 상반되는 취지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향후 대법원에서 구체적으로 그 유효성에 대하여 다투어져야 할 것으로 보이며, 그 적용의 한계 등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김문수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대한경제>
- 이전글[법률라운지] 공공계약에서 지체상금률과 지연이자율을 정하는 기준 25.02.14
- 다음글[법률라운지] 자금집행순서 약정으로 하도급대금 직불합의에 대항할 수 있을까 25.01.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