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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적정 공사비라는 복잡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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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4-10-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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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적정 공사비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적정 공사비, 제값 받기, 공사비 현실화. 같은 현안에 대해 똑같은 명칭을 사용하면 ‘신선도’가 떨어지니 용어를 달리하지만 메시지는 동일하다. 공공 건설공사비를 시장 가격에 맞게 현실화해 달라는 요구이다.

돈을 더 달라는 단순한 ‘떼 부림’으로 속단한다면 건설기업을 유아적으로 판단하는 무례를 범하는 것이다. 본질은 공공 건설공사의 예산편성, 설계․예정가격 설정, 낙찰, ‘자연스러운’ 설계변경과 공기연장을 거쳐 준공에 이르는 과정에서 존재하는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정부ㆍ발주청 DC(discount)’를 바로 잡아 달라는 정당한 요구이다. 그 결과가 정부와 발주청이 부담해야 할 공사비 상승으로 귀결된다고 해서 이를 상투적인 ‘죽는소리 하는 것’이라고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합리적인 해법은 불가능하다. 공사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현상이며, 문제의 본질은 공사비를 부족하게 만드는 시스템과 관행에 있다.

적정 공사비는 복잡한 문제이다. 현학적(衒學的)으로 표현하자면 복잡계(complex system)에 속하는 문제이다. 복잡계란 상호작용을 하는 많은 구성 요소들이 모여서 전체적으로 복잡한 행동을 보이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복잡계에 대한 정교한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복잡계 문제는 단순 해법이나 한두 개 제도 개선으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복잡계 문제는 전체론적인(holistic) 관점에서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로 푸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핵심은 개별 요소에 대한 분석과 해결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전체 시스템의 구조를 고려하여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전문 연구기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결국 재정 건전성과 공정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으로 보인다.

재정 건전성은 중요한 가치이다. 특히 국가부채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재정 당국의 근심이 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한 예산 절감이 또 다른 비용을 유발한다는 것도 복잡계 문제답게 전체론적인 시각에서 고려해야 한다. SOC 사업의 적기 준공 실패에 따른 사회적 비용, 건설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산업적 비용,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 불가능, 발주청과 건설기업의 갈등 비용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 건설공사비 현실화란 예비타당성조사 등 사업 추진 여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SOC 사업이 창출한다고 제시하는 편익(benefits) 달성 가능한 예산이 편성 및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장미빛 약속’과 매칭되는 예산, 꿈과 현실적인 집행 수단에 괴리가 없는 예산이 공공 건설공사비가 현실화된 모습이다.

적정 공사비 관련 토론회가 열릴 때마다 ‘이런 주제로 토론회를 한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백날 해봐야 소용이 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신 것 같다. 회의감과 좌절감이 크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이 정통 해석이지만, 한 걸음으로는 천리길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적정 공사비 또는 유사한 명칭을 사용한 토론회가 그간 수십 번은 있었을 것 같다. 족히 수십 걸음을 걸은 것이다. 그래도 아직 적정 공사비라는 천리길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 걸음이 아직 모자랐던 것이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걸음만으로 천리길에 다다를 수는 없다. 제도 개선은 자주 큰 목소리로 외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만한 명분과 사회적 수용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명분과 사회적 수용을 끌어내기 위한 건설산업의 노력도 중요하다. 건설 고객에게 가격에 합당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적정 공사비를 위한 행보, 멈출 수는 없는 걸음이다. 건설기업의 당면한 안위(安危) 때문만이 아니다. 건설 후배들에게 ‘살만한 산업’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 건설 선배들에게 주어진 미션이기 때문이다.


김한수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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