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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대의를 상실한 분리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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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452회 작성일 20-06-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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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발주한다고 해서 화재사고가 안 날까요?”

얼마 전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을 두고 한 말이었다. 독자는 건설 관련 공기업에서 수십 년 동안 안전과 하자를 책임졌던 이다.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은 소방시설공사의 분리발주를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앞으로는 공공 발주자는 건설공사 발주 시 전기공사ㆍ정보통신공사와 마찬가지로 소방공사를 따로 떼 발주해야 한다.

해당 개정안은 2017년 5월 발의되어 3년째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 계류된 상태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6대 국회부터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20대에서도 그대로 넘어가는 듯했으나, 결국 막차를 타고 통과됐다.

극적인 반전은 4월 29일 터진 이천 화재사고에서 비롯됐다.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48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동안 현장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강조한 정부는 발칵 뒤집혔고, 해당 개정안이 시쳇말로 ‘다시 살아’ 올라온 것이다.

이후 법안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법안소위를 시작으로 상임위 전체회의-법사위-본회의 의결까지 과정은 불과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럴 거면 지난 십수년간 국회는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하루 만에 법을 만들어도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논의의 전제가 달랐다.

법안소위의 속기록을 들여다보면 찬성 측의 소방청차장은 “2018년 기준 국내 건설시장은 292조원이다. 이 중 소방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 2%인 6조4000억원”이라면서 “분리발주를 반대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당인 김한정 의원은 현행 제도상 소방전문업체의 낮은 하도급률을 들이대면서 분리발주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안전을 위한 법안을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한 셈이다.

물론 안전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하지만 비용을 투입한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리체계 및 관련제도가 뒷받침된 뒤에라야 투입된 비용이 빛을 발한다.

법안소위 당시 건설현장 안전의 주무부처인 국토부 관계자는 시공의 효율성,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의 불분명 등의 근거로 분리발주에 대한 반대의견을 나타냈지만 결과적으로 무시당했다. 낮은 하도급률에 대해선 이미 하도급 적정성 심사제도가 있고 이를 더 강화하는 식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자가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하자, 질문자가 말을 이었다. “글쎄요, 화재사고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땐 또 어떤 법안이 나올지 궁금하다.

 

<건설경제> 정회훈기자 h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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