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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입찰제한도 ‘패자부활전’ 도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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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407회 작성일 19-10-3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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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ㆍ자재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행정처분 중 하나가 입찰참가자격제한이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년간 공공공사 참여나 납품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국내외 수백개 현장을 운영하는 대형 건설사로선 치명타다. 공공수주 길이 막히면 완공된 현장의 인력을 재배치할 새 현장이 줄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다. 민간공사는 물론 해외 수주전에서도 외국 경쟁사들의 흠집내기 공세에 좌절해야 한다. 중소건설사는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처지로 내몰리기도 한다.

처분 기업들로선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하지만 법원에 처분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기업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므로 법원도 대개 가처분을 받아들이지만 본 소송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 1심부터 3심까지 수년간 이어지는 소송으로 처분시한을 늦추고 최종심에서 제재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쓰러지는 곳도 부지기수다. 막대한 시간ㆍ비용에 정신적 고통도 만만치 않다. 소모적 법적공방의 사회적 비용은 국가 전체가 분담할 몫이다.

최근 한국공공사회학회의 추계학술대회에서 이런 폐해를 완충할 아이디어가 나와 눈길을 잡았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의 김진기 법무실장이 독일 등 유럽과 한국의 정부조달법을 비교한 연구를 통해 제안한 EU(유럽연합)식 셀프 클리닝(Self-Cleaning) 제도다. EU 정부조달지침에 규정된 이 제도는 입찰참가자격을 상실한 업체라도 EU 지침이 정한 입찰적합 증명을 받으면 입찰참가를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김 실장은 이를 ‘공공입찰 부문의 패자부활전’이라고 표현했다.

요건은 까다롭다. 이른바 ‘3C’로 표현되는 보상ㆍ협력ㆍ예방조치 이행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즉 형사범죄 혹은 과실로 야기한 발주청과 국가에 대한 손해를 보상하고, 조사기관 등과 적극 협력해 사실관계를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유사한 범죄나 과실행위를 예방할 적정 조치 이행사실도 입증해야 한다. EU 각국에서도 입찰제한 등과 관련한 입법 미비 등의 논쟁이 일었지만 2016년 4월까지 각 국별로 이 지침을 국내법에 수용하면서 상당부분 해소했다고 한다.


국내 입찰 관련 법ㆍ제도는 처분권을 행사할 기관은 늘리고 이를 피하려는 기업에 대한 색출ㆍ응징은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잘못을 충분히 사죄ㆍ배상하고 재발 방지책을 충실히 이행한 기업에 대한 중간 단계의 구제장치가 없다. 과징금 대체도 경미한 사안에 한정된다. 사회적 비용 낭비에 더해 법률적으로도 사인끼리 맺은 사법상 계약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자의 공법적 처분(입찰참가 제한)이 허용되는 법적체계 부정합 논란도 상당하다.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사고나 불법사실을 숨기려 하고, 걸리면 소송에 매달린다. 이런 악순환 고리를 끊고 건설산업에 준법경영을 제대로 뿌리내릴, 참신한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건설경제> 김국진 산업2부장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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