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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설계가격과 예정가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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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2,073회 작성일 12-09-2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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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건설업계를 취재하면서 아직도 속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하나 있다. 바로 예정가격과 낙찰률의 관계이다.  

 최저가 입찰의 경우 낙찰률이 70%대 미만으로 결정되면 어김없이 ‘저가투찰’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반대로 낙찰률이 90%를 넘어서면 건설사들이 많이 남겨먹을 것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국서부발전이 발주한 태안IGCC 플랜트 건설공사 입찰에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12개사가 참가한 입찰에서 금호건설과 한화건설 2개사를 제외한 나머지 10개사의 투찰률이 100%를 넘어 자동 탈락한 것이다.

 낙찰률은 통상 예정가격(예가)을 기준으로 발표된다. 예가란 발주처 계약담당자가 ‘이정도 가격이면 사업이 가능하다’는 일종의 가격제한선이다. 따라서 선을 넘은 투찰액은 자동으로 탈락한다. 또한 예가는 저가투찰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도 이용된다. 예가 대비 적정선을 제시해야 사업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예가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설계가격이라는 게 있다. 해당 사업과 관련한 발주기관의 기술부서(때로는 용역을 주기도 하지만)에서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뽑은 견적금액이다.

 물론 가격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시장가격을 직접 조사해 대입할 수도, 품셈 및 실적공사비를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부서나 계약부서나 어느 하나 마련된 가격 툴을 사용했을 것이다. 자신의 입맛대로 아무렇게나 금액을 적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태안IGCC 입찰로 돌아가자. 대부분의 건설사가 줄줄이 탈락한 이유는 설계가와 예가의 엄청난 차이에 있다. 입찰공고문에 명시된 설계가와 입찰장에서 발표된 예가의 차이는 무려 19%, 금액으로도 약 240억원 차이가 났다.

 이를 두고 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가격을 대입했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기관에서 견적을 뽑으면서 20% 가까이 금액 차가 발생할 수 있냐”면서, “예산부족으로 인한 책임을 건설사로 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락한 건설사 중에는 국내 굴지의 메이저 건설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건설사에서 뽑은 견적이 기준에 못미친 결과를 얻은 셈이다. 한 메이저 업체 관계자는 “103%의 실행으로 투찰했는데도 예가 대비 100%를 넘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국가계약법을 다루는 기획재정부도 놀란 눈치다. 계약제도 관련 주무관은 “예가는 재무담당자의 고유권한”이라고 하면서도, “설계가와 예가의 차는 개별 사업마다 다르겠지만 5~6% 정도가 일반적이다. 구체적인 자료를 보지 못했지만 삭감률만 놓고 본다면 해당 발주처 담당자가 과도하게 삭감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사실 최저가 입찰에서 예가는 큰 의미가 없다. 예가가 얼마됐든 예가 안쪽으로 투찰한 입찰자끼리 경쟁해 낙찰자가 선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낙찰률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99.99%로 낙찰을 받았다고 해서 건설사에 이익이 많이 남을 것이라는 선입견은 없어져야 한다. 나아가 이런 식의 예가대입이라면 낙찰률 100% 이상 자동탈락이라는 제도도 사라져야 한다. 이날 금호건설과 한화건설의 투찰률은 각각 92.09%, 98.79%이었다.

정회훈기자 h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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